[시론/이주향]남자들이여, 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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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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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 수원대 철학과 교수
이주향 수원대 철학과 교수
설 연휴에 한 남자가 세상을 떴다. 뇌경색이었다. 말년에 박연차로부터 2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기소돼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지만, 이미 흠집이 난 명예로 그는 심하게 마음고생을 했던 모양이다. 그가 그토록 중시해온 명예나 경력이 더는 그를 지켜주지도, 지탱해주지도 못하고 오로지 스스로를 딛고 일어나야 할 때 그의 푯대가 된 것은 바로 ‘어머니’였나 보다.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그가 페이스북에 남긴 시는 유서가 됐다. ‘당신은/날마다 저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날마다 제가 다가가고 있습니다/보이시지요, 어머니.’

돌아올 수 없는 먼 길, 그가 어머니를 따라간 걸까, 어머니가 그를 인도한 걸까? 말을 안 해도, 마마보이가 아니더라도 남자들의 심장엔 어머니가 살고 있다. 어머니 사랑을 모르는 소년은 세상을 믿지 못하고 어머니의 신뢰를 받지 못한 소년에게 자존감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헤매고 좌절하고 절망할 때도 자신을 꾸짖거나 포기하지 않고 일어날 수 있는 건 어머니를 통해 사랑을 배웠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세상이다.

남자는 바로 그 어머니를 통해 남자도 되고, 가장도 되고, 의무감도 배운다. 남자는 울지 않는 거야! 남자가 질질 짜면 돼? 집안의 가장이 돼야 하는데! 남자가 경제적인 능력이 있어야지! 세상에서 자기를 제일 사랑하는 여인에게서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온 그런 말들은 그냥 흘러갈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온몸, 온 세포를 물들이는 세계관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원장 최금숙)의 보고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자들은 다른 나라 남자들에 비해 가장으로서의 의무감이 강하다고 한다. 남자라면, 돈을 열심히 벌어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이 땅의 남자들의 뇌리에 박혀 있다는 것이다. 처자식을 벌어 먹일 수 없다면 남자도 아니다, 눈물이 많으면 남자도 아니다 하는.

그런데 지치거나 힘들 때, 외롭거나 불안할 때 울지도 못하는 남자가 무엇을 할까? 담배를 피워 물거나 술을 마시거나 아니면? 우리 주변엔 술을 마시지 않고는 가슴을 열지 못하는 ‘강한 남자’가 많다. 남자는 평생 세 번만 우는 거라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울지 않기 위해 남자들이 얼마나 경직돼 있었는지. 돈을 못 벌게 될까봐 또 얼마나 불안해하는지. 돈만 벌면 그것이 면죄부를 얻은 것인 줄 아는 남자들은 또 돈을 벌지 못하면 생이 끝나는 것으로 느낀다. 거기가, 업무 자신감이 곧 남자로서의 능력이라 생각하는, 남자들의 착각의 온상이다. 생각해 보면 퇴직을 당하고도 아내에게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불쌍한 남자 이야기가 우리만큼 자연스러운 나라가 또 있을까. 사랑하는 여자가 결혼을 하자는데 가장으로서의 의무감에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가고 싶은 젊음이 요즘처럼 쉽게 이해되던 때가 또 있었던가.

남자들이여, 울고 싶을 때 울어라. 울고 싶을 때 흐르는 눈물은 육감을 깨우는 신성한 것이니 당신의 눈물샘을 마르게 하지 말라. 술 없이는 속내를 털어놓지 못하고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당신은 강한 남자가 아니라 정서적으로 무디고 둔한 남자다. 그런 남자는 나약해질까 지레 겁을 먹고 생을 방어하기만 하는 삶의 머슴일 뿐이다.

당신은 일하지 못할까 두려운 남자인가? 아니면 가족을 부양하지 못할까 불안한 가장인가?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한 가족은 당신에게 당연히 요구만 한다. 가족에 대한 전적인 의무감을 내려놓아도 된다. 그래야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타인도 당신 앞에서 경직되지 않고 정직해질 수 있다. 당신은 전적으로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신 혹은 머슴이 아니다. 당신은 그저 의무를 나누고 책임을 나눠야 하는 가족의 한 사람일 뿐이다.

이주향 수원대 철학과 교수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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