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유병규]2011년 서구 경제의 반성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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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SAIS초빙연구원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SAIS초빙연구원
자본주의 근원지이자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미국과 유럽 경기는 올해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의 금융위기와 유럽의 재정위기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미약하지만 미국 경기가 회복되고 유로 지역도 문제 해결의 가닥을 잡아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나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은 2012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 불안의 근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구조적 취약점을 극복하는 데 장기간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는 서구 경제 상황에 따라 부침이 반복되는 ‘롤러코스터 경제’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서구 경제가 세계 경기의 불안정성을 높이는 문제아로 인식되면서 선진경제 운용체제에 대한 반성이 일고 있다. 우선 재정구조 악화에 대한 자기 성찰의 목소리가 높다. 과도한 정부 재정 지출로 경기 조정능력을 상실하고 국가 재정 파탄의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국가 재정의 역할이 무력화되면서 정부 지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케인스주의 경제정책의 타당성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제 정부 재정을 통한 경기 활성화를 주장하는 케인스학파의 효용성은 상실했다고 주장하나, 케인스주의자들은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실패로 그 책임을 돌린다. 서구 경제가 무력화된 것은 케인스이론이 잘못된 게 아니라 정부가 무분별하게 재정을 남용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강변한다. 수요 부족으로 경기가 침체될 때 이를 진작하기 위한 정부 지출이 효과를 보려면 투자 분야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부 투자로 인한 국민총생산이나 고용 증가 등으로 나타나는 재정 지출 승수가 떨어지고 있는 것은 사회간접자본이나 신사업과 같은 순수 투자 분야보다 빈곤층 등 경제적 취약 부문에 대한 시혜적 이전 지출이 눈 덩이처럼 불어난 데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케인스의 처방이 문제가 아니라 이를 실행하는 정부가 약을 잘못 써 재정 적자만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과도한 정부지출로 재정파탄 위기

두 번째는 산업구조에 대한 자기 성찰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자리를 늘리고 빈부 격차를 해소하는 데 있어 제조업의 중요성이 다시금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그동안 제조업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금융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집중 육성했으나 이것이 오히려 경제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에 대한 대책이 소홀했다는 반성이 일고 있다. 천문학적 연봉을 주는 금융산업의 성장은 미국의 국내총생산을 증가시키지만 이 혜택을 입는 사람은 미국 명문 경영대학원 등을 나올 수 있는 소수 고급 인력에 한정된다. 금융업 등 지식서비스업 중심의 산업구조가 형성되고 ‘미국산 제품’이 사라지면서 미국의 계층 간 임금 격차는 확대되고 대량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지 못하게 된 것이다.

세 번째는 경제정책을 주도하는 정치인들의 리더십에 대한 아쉬움이다.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한 정론에 바탕을 둔 정책을 펴기보다는 자신들의 입지 강화를 위한 정략적 판단에 근거해 국정을 사유화한다는 질책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민주당이 집권하면 서민들을 위한 복지 지출을 늘리고, 공화당은 세금 감면을 해주는 바람에 재정 적자는 갈수록 증가했다고 성토한다. 그리스 등 유럽 경제위기의 지뢰밭 역할을 하는 국가들도 대개 제조업이 없고 대중인기영합주의로 국가 재정이 방만하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에 더해 건전한 자본주의 시민정신이 사라지고 있는 것도 서구 경제 위기를 확산시키는 배경으로 인식된다. 경제가 성장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오로지 재물 축적에만 신경을 쓴 것이 빈곤과 같은 경제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효율성만 중시하는 물적 성장 일변도의 획일적 경제사회 가치관이 자리를 잡으면서 사람들의 심신이 피폐화되고 상호 신뢰, 정직함, 동정심과 같은 사회 공동체정신이 설 자리가 사라졌다는 뼈아픈 반성이다. 이에 따라 시장원리에 근거한 효율성과 사회 공동체정신에 바탕을 둔 공정성의 조화가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대중인기영합 재정지출 경계해야

여기서 주의할 것은 공정성의 의미다. 현재적으로는 소득 분배의 공평성을 말하는데, 부자의 것을 빼앗아 빈자에게 나누어주는 로빈후드 같은 강압적이고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법과 제도에 근거한 기회의 균등함을 뜻한다. 또한 미래적 측면에서 세대 간 형평성도 중시한다. 이는 현 세대가 재정 등 자원을 남용하지 않고 미래 세대의 살 길을 열어 주라는 것이다. 선진 경제권의 문제는 결국 물질 지상주의 추구와 분배 악화로 인한 상대적 가난, 자본주의 시민정신의 빈곤 문제로 귀착된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정치 지도자들과 절대적 부를 향유하는 부유층들이 경제사회 공동체 유지를 위해 책임을 다하는 ‘청지기정신’의 고양이 필요하다는 처방이 힘을 얻고 있다. 서구 경제의 시행착오와 해결 과정은 이를 따라가는 한국 경제 입장에서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SAIS초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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