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돌풍’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통과’ ‘중동 민주화’ 등 굵직한 뉴스가 많았지만 내가 가장 충격 받았던, 그리고 감동을 느꼈던 올해의 뉴스는 조금 다르다. 2011년의 가장 가슴 아팠던 소식은 고3 아들이 1등만 강요하던 엄마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했던 사건이다. 가정해체와 성적만능주의의 비극을 처절하게 보여주었다. 가장 안타까운 소식은 짜장면을 배달하며 번 수익으로 어린이들을 도와온 김우수 씨가 교통사고로 숨진 일이다.
2011년의 감동 김우수… 서영남…
김 씨는 중국음식점 배달원으로 번 월 70만 원의 수입으로 어린이재단 아이들을 후원했다. 그는 뼛속까지 외로웠다. 결혼한 적도 없고 휴대전화에는 단 하나의 문자메시지도 없었다. 보육원에서 자라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그는 나쁜 길로 빠져들 수도 있었지만 자신이 겪은 상처와 고통을 ‘남을 돕는 일’로 승화했다.
인천에서 노숙인을 위한 무료식당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는 서영남 씨는 올해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25년간의 가톨릭 수사 생활을 접고 2003년 환속한 그는 노숙인의 자립을 돕는 느슨한 공동체 ‘민들레의 집’과 함께 노숙인들이 낮에 잠시 쉴 수 있는 ‘민들레 쉼터’를 만들었다. 이 쉼터는 노숙인에게 잠을 재워주지 않는다. 노숙인들은 낮에 쉼터에서 책을 읽고 빨래나 목욕을 하고 저녁에 노숙하러 나가야 한다. 서 씨는 노숙인들이 노숙을 그만둘 의지가 생길 때에야 도와주기 시작한다. 민들레국수집은 정부 지원도 받지 않고 생색내기 자선도 사양한다. 그런데도 쌀이 떨어지면 쌀이 들어오고 반찬이 떨어지면 콩나물과 감자가 들어오니, 예수가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000명을 먹였다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여기에도 있다 하겠다.
서 씨에게 나눔의 의미를 물었다. “하루는 낯선 분께 전화가 왔어요. 유황 먹인 오리를 좋아해서 몇 마리 사다먹었는데, 오리 뼈가 남았으니 가져가서 끓여드리라는 것이었어요. 뼈에 살도 많이 붙어 있고 유황을 먹여 키운 오리 뼈라 버리기도 아깝고 해서 냉동실에 얼려두었으니 가져가라는 겁니다.” 서 씨는 그 사람은 나눔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다고 웃음 지었다. “나눔이란 자기의 귀한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필요 없는 것을 나누는 것은 나눔이 아닙니다.”
자본주의 경제학의 시조 애덤 스미스도 ‘국부론’보다 앞서 저술한 ‘도덕감정론’에서 “인간의 본성에는 자기에겐 전혀 이득이 되지 않는데도 타인의 이익에 관심을 두는 성향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눔을 본성의 차원으로 다루기엔 사회 분위기가 심상찮다. 미국에서는 상위 1%에 대한 99%의 불만이 ‘월가 점령시위’로 나타났고 우리나라에선 무상급식과 반값등록금으로 상징되는 ‘복지논쟁’이 뜨거웠다. 분배와 복지는 나눔의 정치적 표현이다.
자발적 나눔이 시장경제 살린다
나눔은 빈부격차와 사회갈등을 완화시켜 공동체를 존속시킨다. 워런 버핏을 비롯한 미국의 거부들이 “내게 세금을 더 걷으라”고 한 것도 나누지 않으면 시장경제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를 깔고 있다. ‘재정 강화를 바라는 애국적 백만장자 모임’의 대변인 찰리 핑크가 이를 ‘계몽된 이기심’이라고 표현한 것은 정곡을 찌른다.
한 분석에 따르면 1달러의 기부는 19달러의 수익을 가져온다. 기부 자체가 투자인 셈이다. 나눔은 빈부격차와 사회갈등을 완화시켜 공동체를 존속시킨다. 나눔은 시장경제가 작동하지 않는 그늘에 온기를 전달해 시장경제가 잘 돌아가게끔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자발적 나눔이 없으면 그것이 세금이건, 동반성장이건 어떤 형태로든 강제적 나눔이 시작된다. 강제적 나눔은 시장을 왜곡시키고 갈등을 조장한다. 결국 자발적 나눔이야말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필수조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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