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미야의 東京小考]쓰나미에 살아남은 어린이들의 미래는…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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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
얼마 전 3·11 동일본 대지진 때 지진해일(쓰나미)이 할퀴고 간 도호쿠(東北) 지방을 둘러보면서 한 여성을 만났다. 마을 대부분이 물에 잠겨 주민 20명 중 1명꼴로 목숨을 빼앗긴 미야기(宮城) 현의 미나미산리쿠(南三陸) 마을에서였다.

3월 5일 결혼식을 올린 그 여성은 그로부터 6일 만에 남편을 잃었다. 당시 그녀는 임신 6개월. 뭐가 뭔지 모를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해 몇 번씩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도 했다. 하지만 태어날 아기를 간절히 기다리던 남편을 떠올리며 꿋꿋이 견뎌냈고 7월에 귀여운 공주님을 출산했다.

남편에게는 어린 여동생이 있었지만 함께 물에 휩쓸렸다. 시어머니는 이혼 후 보험 외판원 생활을 하며 키운 아들과 딸, 그리고 함께 살던 부모님까지 모두 잃었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아픔과 고독에 휩싸여 있는 그녀를 구한 것은 이제 막 결혼한 며느리와 며느리의 배 속에 들어 있는 아이였다. 유일한 핏줄인 손주의 탄생을 얼마나 기뻐했던가. 아빠 얼굴도 모르고 태어난 이 아이는 지금 모든 사람에게 희망의 별이 됐다.

침통함과 우울함에 휩싸인 피해지 주민들의 마음을 달래주고 격려해주는 것은 바로 이 어린이들의 존재다. 미나미산리쿠 마을의 한 가설주택 지구에는 지진 이틀 후에 태어난 아기가 있었다. 이 아기는 부모뿐만 아니라 이웃 주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이른바 ‘가설주택의 아이돌’이 됐을 정도다.

부모 모두 여읜 아이만 240여 명

대지진과 쓰나미 피해로 엄마나 아빠를 잃은 어린이는 1500여 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양친을 모두 여읜 아이는 240여 명이나 된다. 대부분 조부모 등 친척집에 맡겨져 크고 있지만 이 아이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앞으로 부모 없이 살아가야 할 고통이 얼마나 이들의 어깨를 짓누를 것인가.

이 어린이들이 성인이 됐을 무렵에 피해지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아직은 미래에 대한 청사진조차 그릴 수 없는 마을이 대부분이지만 각지의 실정에 맞게 부흥작업이 이뤄지기만 바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더 딱한 사정에 놓인 이들이 바로 원전사고로 고향을 잃어버린 어린이와 청년이다. 후쿠시마(福島) 현 안에는 방사능 오염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피난한 학교가 적지 않다. 원전 근처인 이타테(飯館) 마을에서 후쿠시마 시내로 피난한 현립농업고등학교 이타테 분교도 그중 하나다. 이 학교는 피난지의 체육관을 3구역으로 나눠 교실로 쓰고 있고 인접한 숙박시설을 학생의 기숙사로 하고 있다.

농업과 축산업이 주요 산업인 인구 6000명의 이타테 마을은 특유의 상부상조 정신으로 마을을 일궈 왔다. 그만큼 학생들의 마을에 대한 애정도 강하다. 하지만 원전사고로 풀 한 포기, 소 한 마리도 키울 수 없게 됐다. 지역 내 기업에 취직하는 길도 막혀버렸다.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피난생활을 하고 있는 가정도 많다.

소와 헤어진 마지막 날까지 가족처럼 뒷바라지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감동한 한 학생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낙농가로서의 삶을 이어가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하지만 방사능 오염물질을 씻어내는 제염 작업이 언제 끝나 마을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지경이다. 마을은 지금 어디가 논이고 어디가 밭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잡풀에 뒤덮여 버렸다.

또 다른 학생은 “장래에 이타테 마을에 취직해 집도 짓고 결혼도 해 알뜰살뜰 살고 싶지만 지금은 불안만 가득하다”고 했다. 마을은 대체 얼마나 방사능에 오염됐는지, 제염은 언제 끝나게 될지, 앞으로 태어날 자녀들에게 영향은 없을 것인지, 사람들이 얼마나 고향으로 돌아올 것인지…. 이런 문제가 확실해지지 않는 한 자신도 마을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이들에게는 참으로 절실한 문제들이 아닐 수 없다.

무거운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은 피해지의 젊은이들뿐만이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가 지속되면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일본은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까지 엄청난 세금과 연금의 압박 속에 살 수밖에 없다.

원전피해지역 주민 사정은 더 딱해

설상가상으로 전에는 많지 않았던 빈곤층까지 점점 늘고 있다. 결국 세대 간 격차와 빈부 격차가 이중으로 일본 사회를 갉아 먹고 있는 것이다. 쓰나미 피해지에서는 이런 고통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다.

일본의 정치는 이런 현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과감한 정책을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인데도 지금까지 그래 왔듯 전혀 미더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미래의 어린이들에게 희망이 보이는 사회를 남겨줄 것인가, 어두운 사회를 남겨줄 것인가. 커다란 갈림길에 선 채 올해도 서서히 저물어간다.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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