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평인]재잘거려라,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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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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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트위터(twitter)는 영어로 재잘거린다는 뜻이다. 트위터에 들어가면 하늘색 바탕에 한 마리 새가 보인다. 새가 지저귀듯이 재잘거리는 곳이 트위터다. 채팅(chatting)의 채트도 생각나는 대로 수다를 떤다는 뜻이다. 재잘거리는 진보는 넘쳐나는데 재잘거리는 보수는 별로 없다. 재잘거려라. 보수. 세상이 변했다. 근엄한 말만 하고 있다가는 망할지 모른다.

생각보다 직감이 중요한 전자매체

마셜 매클루언은 ‘미디어(매체)는 메시지다’라고 말했다. 그는 매체를 구전(口傳), 글과 인쇄매체, 전자매체로 구별한다. 입에서 입으로 소식을 전하던 시대에는 메시지는 기억하기 쉬운 운문에 적합해야 한다. 운문은 시인의 것이고, 시인은 운문으로 그 사회의 기억을 전해주는 사람이었다. 글이 발명되고 메시지는 산문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운문은 기억을 위한 것이지만 산문은 성찰을 위한 것이다. 메시지는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전달됐다. 전자매체의 등장으로 다시 상황은 변했다. 메시지는 즉각 전송되고 즉각 응답을 원한다. 인쇄매체에서는 성찰이 먼저이고 반응은 나중이지만 전자매체에서는 반응이 먼저고 성찰은 나중이다. 생각보다 직감이 중요해졌다.

구전 시대에서 문자 시대로 넘어갈 때 반발이 있었다. 플라톤은 당시의 뉴미디어인 문자가 살아있는 정신의 직접적 교류에 방해가 된다고 봤다. 소크라테스는 말로 진리를 깨우치게 했을 뿐 스스로는 어떤 글도 남기지 않았다. 인터넷 시대에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생각을 정리한 후에 글을 쓰는 데 익숙한 작가에게 말부터 하고 본다는 것이 도무지 쉽지 않다. 인쇄매체를 호령하던 1급 작가가 전자매체에 대한 부적응을 겪고 있는 사이에 변화에 재빨리 적응한 이외수 같은 작가가 트위터의 스타로 부상했다.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가 뜬 것은 참을 수 없이 가볍게 재잘거리기 때문이다. 거짓도 진실인 것처럼. 아니 거짓이든 진실이든 뭔 상관이냐는 태도로, 쫄지 않고. BBK 사건의 에리카 김이 ‘눈 찢어진 사람’과 불륜 관계였다고 말할 때도 쫄지 않고. 어차피 ‘꼼수’인데. 미국소 먹으면 광우병 걸리고 천안함은 스스로 좌초하거나 미군이 쏜 어뢰에 맞은 거다. 사실이든 아니든 뭘 어차피 ‘꼼수’인데.

재잘거리기 위해서는 정신 자세를 바꿔야 한다. 근엄함, 혹은 그 반대의 한 쌍인 열등감 같은 것은 집어던져라. 김어준이 잘 재잘거리는 것은 스스로 삐끼요, 딴지요, 꼼수로 자리매김하기 때문이다. 그는 조국의 ‘진보집권플랜’에 흐르는 ‘진보적 엘리트 특유의,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공기처럼 흐르는, 우아하고 거룩한 오만이 재수 없을 수 있겠다’ 싶어 ‘닥치고 정치’를 냈다고 말했다.

생각해보고 나서 정리해서 말하겠다는 것이야말로 인쇄시대적 사고다. 재잘거리기 위해서는 말이 앞뒤가 맞는지 따지는 것을 일단 접어둬라. 먼저 반응을 띄우고 느낌을 말하고 그러고 나서 따져보는 것이 순서다. 또 재잘거리기 위해서는 꼼수라도, 꼰대라도 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진보는 꼼수라고 자처하는데 보수에는 꼰대로 보이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사람들만 있어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말하고 나서 생각한다

인쇄매체 시대의 논객들이 주춤하는 사이 재빨리 새로운 전자매체 시대에 적응한 논객들이 공론장을 잠식해가고 있다.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은 중심을 지향하고 비록 시청취자 편지나 독자 투고 같은 피드백이 있기는 하지만 중심으로부터 모든 메시지를 발사한다. 여기서는 글쓰기 말하기 하나하나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시대의 논객은 네트워크로 생산되고 분배되는 정보에 익숙하다. 스스로를 유일한 발신자로 생각하지 않고 여러 혹은 많은 발신자 중의 하나로 여긴다. 그렇다고 진실한 발신의 의무가 약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당위로서나 그렇고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재잘거릴 수 있는 것은 이런 구조 속에서다. 좋든 나쁘든 시대가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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