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승호]F1 내년에도 달릴까

동아일보 입력 2011-11-02 03:00수정 2011-11-0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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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호 사회부 차장
지난해 12월 8일자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와 프랑스의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는 독특한 광고가 게재됐다. 왼쪽 눈이 시퍼렇게 멍든 80대 노인의 상반신 사진이 시계와 함께 실렸다. 스위스 시계 브랜드 ‘위블로’ 광고였다. 모델은 포뮬러원매니지먼트(FOM)의 버니 에클레스턴 회장. 광고가 실리기 며칠 전 그는 영국 런던의 골목길에서 강도를 만나 4억 원어치의 물품을 뺏겼다. 털린 보석 중에는 F1을 후원하는 위블로의 공식 한정판 시계가 있었다. 이 광고는 언뜻 보면 위블로 홍보용 같지만 실제로는 F1을 알리는 것이었다. F1 홍보를 위해서는 자신이 망가지는 것쯤은 괜찮다는 그의 집요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에클레스턴 회장은 국제자동차연맹(FIA)에서 F1그랑프리 운영권을 2110년까지 100년간 얻었다. 자산가치만 4조 원에 달하는 거부(巨富)인 그는 2007년 영국 BBC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노인’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전남도가 그런 에클레스턴 회장과 힘겨운 협상을 벌이고 있다. 매년 대회 때마다 내야 하는 거액의 개최료와 TV 중계권료를 낮추기 위해서다. 보름 전 코리아그랑프리를 개최한 전남도는 FOM에 개최권료 480억 원, TV 중계권료 160억 원 등 640억 원을 지급했다. 또 운영비로 300억 원을 써 이번 대회에서만 940억 원을 지출했다. 하지만 대회 티켓 판매 수입 등은 280억 원에 불과해 660억 원의 적자를 떠안게 됐다.

개최권료와 중계권료는 최초 협상가부터 매년 10%씩 오르도록 돼 있다. 내년에는 700억 원 이상을 내야 한다. 코리아그랑프리는 개최권료와 중계권료를 낮추지 않으면 해마다 적자를 면하기 힘든 ‘고비용 구조’다. 이 때문에 전남도는 협상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에클레스턴 회장은 지난달 28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살다 보면 감당치 못할 일이 많은데 그런 일들을 굳이 붙들고 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돈을 낼 형편이 못 되면 그만두라’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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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도는 신용장 개설 시한인 이달 말까지 협상을 마무리 짓지 못하면 내년 대회를 못 치를 수도 있다. 대회조직위원장인 박준영 전남도지사는 조만간 에클레스턴 회장을 만나 담판을 짓겠다고 했다. 개최권료를 내리지 않으면 대회를 치르지 않을 수도 있다며 배수진을 쳤다.

전남도의 재정자립도는 20.7%로 전국 16개 광역시도 중 가장 낮다. 감당하지도 못할 F1을 시작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게 무리가 아니다. 이에 박 지사는 “가난하면 하늘만 쳐다보란 말이냐”고 반문한다. F1은 낙후된 전남이 돌파구를 찾기 위해 유치한 국제대회다. 내년에 전남 여수에서 열리는 세계박람회도 마찬가지다.

F1으로 수익모델을 만드는 것은 전남도가 풀어야 할 숙제다. 하지만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 국가브랜드를 높이는 것은 정부와 기업의 공동 책임이기도 하다. F1 개최국 중 중국 싱가포르 등 8개 나라에선 중앙정부가 30% 정도 운영비를 지원하지만 우리는 ‘국가사업이 아니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과 모터스포츠 발전을 위해 국내 자동차 메이커들의 참여도 절실하다. 현재는 LG만 글로벌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내년 대회 개최가 불투명하다. 미래 모터스포츠 메카로 발돋움하려는 전남도의 꿈이 영글기도 전에 시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정승호 사회부 차장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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