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형삼]‘후쿠시마 보도’ 반성하는 일본 언론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31일 20시 00분


이형삼 논설위원
이형삼 논설위원
3·11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접한 일본 언론매체들은 시종 차분하고 냉정했다. 추측성 보도나 자극적 논조는 물론 시신(屍身) 사진 한 장 찾아보기 어려웠다. 사회 불안을 우려해 과열 보도경쟁을 자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다 보니 정부와 도쿄전력의 의문투성이 발표에만 의존한 보도로 국민의 알 권리를 외면했다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지난주 도쿄에서 열린 한일 언론인 세미나에서도 당시 보도의 기조가 주요 화제였다. 일본의 한 방송사 간부는 ‘냉정한 보도’라는 표현을 ‘최대의 굴욕’으로 받아들였다. 정부가 내놓는 자료를 제대로 검증도 하지 않고 보도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정부가 늘 ‘일본군 피해는 미미하다’고 발표하던 것을 앵무새처럼 따라 보도한 것과 다를 게 없다고 자책했다.

한 신문사 간부는 전문성 부족을 절감했다고 털어놨다. 원전 사고는 과학부 기자들이 맡았으나 평소 과학 기술 우주 의료 등을 폭넓게 커버하느라 원전의 구조나 방사능의 영향 등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축적하진 못했다는 것이다. 방사능이 누출된 상황에서도 정부의 입만 바라보며 ‘아직 멜트다운(원자로 용해) 정보는 없다’고 보도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언론사들이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는 반성도 나왔다. 기자들이 방사능에 노출되면 회사가 책임을 지게 될까 봐 현장 취재를 허락하지 않았다. ‘국민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다’는 비난을 들을까 봐 멜트다운 가능성을 적극 보도하지 않았다. 제도권 언론이 이런 행태 때문에 불신 받은 반면 자유기고가들이 저돌적으로 취재해 펴낸 르포집과 단행본이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일본 언론은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스스로의 관성(慣性)과 한계를 냉철하게 돌아보면서 한 단계 더 성숙해진 듯했다. 그들은 “원전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중요한 것은 미래”라며 이번 사태의 원인을 끝까지 추적해 대책을 제시하는 것이 언론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도쿄전력 등 9개 전력회사의 지역 독점에 따른 모럴 해저드, ‘원자력 마을’이라 불릴 만큼 폐쇄적인 동료의식으로 뭉친 정부·전력회사·전문가 집단, 원전을 추진하는 경제산업성과 원전을 감시하는 원자력안전보안원의 유착을 밝혀내는 탐사보도가 이어졌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점들이 비단 일본만의 것일까. 후쿠시마 사고 이후 우리 사회에서도 언론과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원전 찬반론이 대립하고 있다. 하지만 양쪽 주장 모두 설득력이 낮다. 전문성과 검증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탈(脫)원전파는 ‘일본에서 보듯 사고는 언젠가 일어난다’ ‘독일도 탈원전을 선언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엔 한국에서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가 원전의 비상발전기를 침수시켜 방사능이 새나갈 가능성이 얼마쯤 된다는 지질학적 분석이나 양국의 원전 설계 비교는 빠져 있다. 후쿠시마 사고는 몇백 년 만에 한 번 올까 말까한 쓰나미가 덮쳐서 발생했고, 비상발전기를 높은 곳에 두었더라면 막을 수도 있었다. 유럽엔 송전선망이 국경을 넘어 깔려 있고 전류의 주파수가 같아 전력이 모자라면 이웃 나라에서 사올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는다.

친(親)원전파는 ‘원전을 포기하고 촛불을 켜는 시대로 돌아갈 순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 원전들이 예상 가능한 모든 사고의 예방과 피해의 최소화를 위해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치밀한 검증을 하지 않고 있다. ―도쿄에서

이형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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