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민심 불감증 보여준 박영준 출판기념회

  • 동아일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그제 열린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의 저서 ‘당신이 미스터 아프리카입니까’ 출판기념회는 성황을 이뤘다. 현직 장차관과 청와대 관계자 등 1000여 명이 행사장을 찾았고 박 전 차관과 직접 악수를 하려는 사람들은 한참 기다려야 했다. 행사장 입구에는 이명박 대통령, 장관, 공기업 대기업 경영자, 국회의원들이 보낸 화환이 즐비하게 진열됐다. 이날 축하메시지를 보낸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의 오랜 복심(腹心)이자 현 정부 초기부터 ‘왕(王) 비서관’ ‘왕 차관’으로 불렸던 권력 실세의 힘이 풀풀 풍겼다.

박 전 차관의 성대한 출판기념회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민생과는 동떨어진 모습이다. 그에게 정·관·재계 인사들이 줄을 서 ‘눈도장’을 찍으려는 풍경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박 전 차관은 정권 출범 초부터 ‘강부자’ 논란을 일으킨 첫 내각 인선과 검증을 주관했고,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시절 민간인 사찰에 관련됐다는 의혹을 명쾌히 씻어내지 못했다. 어제 국회 국정감사에서 그는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권 획득업체인 C&K 마이닝에 대한 특혜 및 모기업인 C&KI 주가조작 관련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번 의혹은 그가 국무차장으로서 몰두한 자원외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09년 이상득 의원이 ‘영포회’ 논란이 불거진 뒤 “정치 현안에서 물러나 자원외교에 전력하겠다”고 선언한 시기와 맞물려 있다.

신건 민주당 의원이 어제 박 전 차관에게 “과장급 간부들을 만날 때마다 ‘공무원이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돈 벌겠냐’며 C&KI 주식 구입을 권유했다는 제보가 있다”고 하자 그는 “사실무근”이라고 대답했다. 감사원은 C&KI 관련 감사에 나설 채비다. C&KI 주식을 산 공무원이 조중표 전 국무총리실장 이외에 또 없는지 따져봐야 한다. 권력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챙긴 공직자가 있다면 엄히 문책해야 헝클어진 민심을 달랠 수 있다.

정부는 이상득 의원이나 박 전 차관 같은 실세에게 자원외교를 도맡겨 분란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박 전 차관이 자원외교에서 얼마나 큰 공을 세웠는지 모르지만 요란한 출판기념회는 민심 불감증(不感症)을 확실하게 보여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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