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권효]대구는 오늘도 달린다

  • 동아일보

이권효 대구경북취재본부장
이권효 대구경북취재본부장
대구 시내를 가로지르는 신천에 설치된 교량 난간에는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8월 27일∼9월 4일)에 참가한 202개국 국기가 나부끼고 있다. 대구시가 대회를 앞두고 게양한 것으로 대회가 끝나고 한 달이 된 지금도 펄럭인다.

9일 동안 달구벌을 달궜던 육상대회는 기억에서 가물거리지만 대구시는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다. ‘2011’ 번호를 가슴에 달고 몸을 풀면서 트랙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2007년 3월 케냐 몸바사에서 대회를 유치해 성공적으로 치른 긴 여정은 새 출발을 위한 준비였는지 모른다. 참가 규모와 대회 운영, 인정스러운 손님맞이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최고였다는 갈채를 받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대구가 4년 전 이 대회 유치전에 뛰어들었을 때 국내외 반응은 썰렁했다. “육상 불모지인 한국에서, 그것도 서울이 아닌 지방도시에서 유치하려는 게 제정신이냐”는 냉소도 나왔다. 그런데도 대회 유치에 그렇게 몸부림 친 이유는 인구 250만 명인 대구가 과연 어떤 가능성과 잠재력을 갖고 있는지 실험하고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덩치 큰 국제스포츠대회를 유치해 눈앞의 이익을 계산하는 차원이 아니었다. 오히려 “대구에 미래가 있느냐 없느냐”를 가늠하는 척도가 절실했다.

오랫동안 대구를 괴롭힌 일은 국제무대에서 ‘대구’의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지구촌, 글로벌 하는데 대구는 설 자리를 찾지 못했다. 이 대회로 ‘이제 대구가 세계지도에 점을 찍었다’고 하는 말을 듣고 울컥했다”는 김범일 시장의 말은 육상대회가 얼마나 대구 자존심과 맞물려 있었는가를 보여준다. 대구가 점점 작아진다는 걱정과 두려움을 떨쳐낼 계기가 그만큼 절박했다는 뜻이다.

대구시가 막 시작한 ‘포스트 2011’ 계획은 이번 대회가 일회성 반짝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추동력으로 만들려는 의지다.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며 폐쇄적이라는 부정적인 도시 이미지를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며 개방적으로 바꿔 “더 큰 대구, 더 나은 대구, 더 열린 대구를 만들겠다”는 진짜 목표에 도전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포스트 2011은 대회 유치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렵다. 세계대회 개최 도시라는 이유만으로 기업투자가 이어지거나 관광객이 밀려들지는 않는다. 이번 대회가 안겨준 자신감이 미래를 위한 든든한 디딤돌로 작용하려면 차분하고 엄밀하게 돌아보는 자세가 첫 단추다. 이런 점에서 대구시가 이번 대회를 “대구시민의 힘과 뚝심으로 성공시켰다”고 강조하는 것은 여전히 ‘좁은 칸막이’로 비친다. 2002년 월드컵을 위해 지은 스타디움이 있어 유치에 나설 수 있었다. 대회 때는 전국의 많은 지자체와 국민이 응원했다.

대구는 분지여서 답답한 곳이라고들 하지만 피상적인 고정관념이다. 달구벌의 ‘달(達)’은 막힘을 걷어내고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모습이다. 그만큼 대구는 지구촌 시대에 잘 어울릴 싹을 품고 있다. ‘달구벌’과 ‘글로벌’의 발음이 비슷한 것도 느낌이 좋다. 마침 5일 대구에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이 개관했다. 일제강점기에 나랏빚을 국민 힘으로 갚자는 운동의 싹이 달구벌에서 돋아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졌다. 4·19혁명으로 이어진 2·28민주운동도 대구에서 불을 댕겼다. 이런 전통이 육상대회 이후 대구를 이끄는 힘이 되도록 해야 한다. 대구시부터 좁은 틀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역사를 다시 쓰는 새로운 리더십을 잉태해야 할 때다.

이권효 대구경북취재본부장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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