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국 스포츠, 이제 ‘육상의 벽’도 깨자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5일 03시 00분


9일간의 열전을 마무리한 제13회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깔끔한 운영은 세계의 호평을 받을 만하다. 대구스타디움은 대회 기간 내내 관중으로 가득 차 총인원 46만4000명을 넘었다. 관중은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하고 환호했다. 우레와 같은 박수로 선수들을 격려하다가도 100m 출발 직전에는 숨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불모지처럼 여겨지던 한국에 육상을 즐길 줄 아는 저변이 마련된 것이다. 대회 기간에 보여준 성숙한 시민의식도 빛났다.

기록만으로 대회의 성패를 판단할 수 없지만 세계신기록이 남자 400m 계주 하나에 그친 것은 아쉽다. 사상 첫 세계선수권대회 메달에 도전했던 한국 육상계도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홈팬들의 열광적 응원 속에 펼쳐진 이번 대회에서 단 하나의 메달도 얻지 못한 것은 실망을 넘어 부끄러움까지 안겨준다. 1995년, 2001년 대회에 이어 개최국 노 메달은 세 번째다.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수영 세계대회에서 박태환이 우승을 하고, 서구(西歐) 선진국의 전유물처럼 보였던 피겨스케이트에서 김연아가 여왕이 됐다. 한국 스포츠는 이제 육상의 벽을 깨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때다. 아시아권에서는 중국이 황색탄환으로 불리는 류샹을 배출했고 투포환 같은 종목에서 강자로 군림하고 있으며 일본이 마라톤에서도 꾸준한 성과를 내고 있다. 한국 육상이 세계 수준에 근접하지 못하는 것이 인종이나 체격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2009년 한국 선수를 지도했던 자메이카 대표팀 코치 출신 리오 브라운이 “한국 육상선수들은 전국체전에서만 좋은 성적을 거두면 실업팀에 채용돼 월급만 꼬박꼬박 챙긴다”고 한 고언(苦言)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직장을 잡아 생계보장만 되면 그뿐이고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의욕도 기력도 상실한 한국 육상계의 현실을 아프게 지적한 것이다.

육상계는 대구대회를 계기로 장기적인 발전전략을 세우고 꿈나무들에게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 비록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한국을 대표해 출전한 선수들은 다리에 경련이 일어날 때까지 발을 굴렀고 호흡이 멎기 직전까지 달렸다. 그들에게 지속적인 관심과 격려를 쏟아야만 한국에서도 우사인 볼트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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