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녕]곽노현의 善意, 노무현의 好意

  • Array
  • 입력 2011년 9월 1일 20시 00분


코멘트
이진녕 논설위원
이진녕 논설위원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지난달 28일 기자회견문에는 ‘선의’(善意)라는 표현이 3번 나온다.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2억 원을 준 것은 선거와 무관하게 그의 딱한 처지를 외면할 수 없었던 선의의 지원이었다는 주장이다. 선의를 강조하기 위해 그는 “제가 배우고 가르친 법은 인정이 있는 법이자 도리에 맞는 법”이라느니, “합법성만 강조하고 인정을 상실하면 법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라는 등 자신만의 독특한 법철학까지 피력했다.

공직선거법에 ‘후보매수’ 금지 조항만 없었다면 그의 선의는 그야말로 눈물겨운 인정으로 칭송받을 것이다. 부모 자식간이나, 형제자매 간에 오가는 돈이라도 2억 원이라면 어마어마한 액수인데 하물며 남의 어려운 사정을 보다 못해 그만한 돈을 선뜻 내놓는다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곽 교육감은 “이것이 범죄인지 아닌지, 부당한지 아닌지, 부끄러운 일인지 아닌지는 사법당국과 국민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선의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박 교수 쪽의 반응을 보면 된다. 진정으로 고마움을 느끼는지 아닌지 말이다.

후보 단일화와 관련해 사전에 약속된 돈이 아니라면 2억 원이라는 공돈을 받고도 고마워하지 않을 사람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가. 만약 박 교수 쪽이 고마움을 느꼈다면 애당초 이번 사건은 밖으로 터져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박 교수 쪽은 왜 약속한 7억 원을 주지 않느냐고 닦달하다 올해 초에 곽 교육감으로부터 겨우 2억 원만 건네받았다는 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검찰 수사 내용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과 무관하지 않은 돈 거래에 대해 ‘호의’(好意)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자신이 과거 운영했던 생수회사 장수천의 채무를 지인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대신 갚아준 적이 있다. 강 씨는 정치자금법 위반 소지를 피하기 위해 노 전 대통령의 후원회장인 이기명 씨의 용인 땅을 사주고 이 씨가 그 돈으로 변제를 하는 우회로를 택했다. 이 거래가 여러 가지로 문제가 됐을 때 노 전 대통령은 ‘호의적 거래’라고 규정했다. 또 자신의 아들과 조카사위가 동업한 기업에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500만 달러를 보내준 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호의적인 동기가 개입한 투자’라고 해석했다.

여기서 호의란 정상은 넘어서지만 그렇다고 불법으로는 볼 수 없다는 뉘앙스가 강하다. 그런 점에서 호의는 100% ‘착한 마음의 발로’라는 선의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부정한 돈거래라도 처음부터 불법의 모습을 확연히 띠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개는 선의나 호의, 인정으로 포장된다. 그것이 불법이 되고 안 되고는 액수의 많고 적음, 반대급부의 약속이나 실행 여부, 돈을 주고받은 사람의 관계와 신분 등 정황에 따라 결정된다.

법은 인정에 앞서 엄격성이 생명이다. 설사 선의나 호의에 입각한 돈거래라고 해도 결과적으로 위법이 되면 법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다. 그것이 법치다. 곽 교육감이 말하는 ‘인정 있는 법, 도리에 맞는 법’이란 게 도대체 어느 세계의 법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곽 교육감은 법학자 출신이고, 노 전 대통령은 변호사 출신이다. 선의와 호의라는 용어가 갖는 법적 효용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는 사람들이다. 행여 두 사람이 법망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의와 호의를 차용한 것이라면 서글픈 일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