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손정완]K팝과 패션 한류의 뉴욕 랑데부를 꿈꾸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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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완 패션디자이너
손정완 패션디자이너
국내에서 디자이너로서의 안정적 위치에 안주하고 있던 내게 용기를 준 사람이 있다. 내가 더 큰 꿈을 꾸고 새로운 시장으로 모험을 하게 한 이는 ‘소녀시대’의 제시카다. 4년 전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어린 소녀였는데도 세련된 젊음과 발랄함이 내 영감을 자극했다. 덕분에 패션 디자이너 데뷔 24년 만에 세계적으로 큰 패션시장의 하나인 미국 뉴욕에 진출할 결심을 했다. 그 결과 올해 2월 뉴욕 링컨센터에서 ‘2011 가을겨울 뉴욕 컬렉션’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가슴 벅찬 경험을 했다.

그사이 제시카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소녀에서 어엿한 여인으로 아름답게 성장했을 뿐 아니라 소녀시대의 일원으로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의 열풍을 이끌며 아시아뿐 아니라 유럽에서까지 한류스타로 우뚝 선 것이다. 장하고 대견스러운 일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케이팝을 만나고 싶다는 깜짝 시위가 뉴욕 한복판인 센트럴파크에서 벌어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20대 뉴요커 100여 명이 소녀시대 등 한국 아이돌 가수들의 뉴욕 공연을 요구하는 플래시몹을 벌였다. 그것이 두 번째였다고 한다. 나의 사랑스러운 뮤즈인 제시카가 세계 최대의 음악시장인 미국에서도 케이팝 스타로 거듭날 날이 머지않은 듯 보인다.

드라마-가요 이어 ‘패션 한류’기대

요즘 한국 드라마로 시작된 한류 열풍을 케이팝이라는 새로운 콘텐츠가 성공적으로 이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 범위를 아시아 위주가 아니라 전 세계의 문화 중심지라 자부하는 유럽 등으로 크게 확대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가진 나로서는 마냥 부러워만 할 수는 없다. 한국의 패션 콘텐츠 역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데 이런 한류 열풍을 어떻게 ‘패션 한류’로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최근 몇 년간 세계 시장 진출을 향한 한국 디자이너들의 노력이 뜨겁다. 이젠 파리나 뉴욕 컬렉션에서 한국 디자이너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 볼 수 있다. 또 한국 패션 콘텐츠를 세계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시키기 위한 정부 및 관련 기관의 지원도 활발해지고 있다. 나도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 문화체육관광부가 디자이너의 미국 진출을 지원하는 패션 행사인 ‘콘셉트 코리아’에 참여하게 됐다. 나 이외에도 디자이너 도호, 스티브J&요니P, 이상봉, 이주영 등이 참여해 9월 9일 뉴욕패션위크에 맞춰 무대에 선보일 예정이다. 이 행사는 한국 디자이너의 진출이 활발하지 않았던 미국 시장에서 한국 디자이너를 소개하는 공식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는다는 데 의미가 있다.

올해 2월 나도 뉴욕에서의 첫 번째 컬렉션을 통해 뜨거운 현지의 반응을 확인했다. 어떻게 다 채울까 고민했던 450석이 다 차고, 스탠드석까지 모두 채워졌다. 그러나 나는 뉴욕이라는 넓은 세계 패션 시장에 단 한 번의 쇼로 안착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까다로운 뉴요커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패션 콘텐츠의 세계화를 위한 콘셉트 코리아와 같은 노력은 패션 한류로 가는 길에 큰 힘이 된다. 앞으로도 단기간의 성과나 실적 등에 연연하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한국 패션에 대한 다양한 지원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전 세계 패션 시장의 규모는 1120조 원에 달한다. 문화적 측면뿐 아니라 산업적 측면에서도 패션의 세계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시장에서 한국 디자이너와 브랜드들이 선전하려면 정부나 관련 기관의 지원만큼 절실한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한국 국민들의 관심과 응원이다. 한국 드라마나 케이팝에 대한 국민의 뜨거운 사랑이 없었다면 오늘과 같은 세계적인 한류 열풍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요즘 주변의 동료나 선후배 디자이너들은 국내에서 한국 패션 브랜드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물량 공세를 펼치는 글로벌 자기상표부착방식(SPA) 브랜드와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사이에서 한국 패션 브랜드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디자이너들과 국내 패션업계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나는 감히 국민 여러분께 한국 패션에 대한 관심을 부탁드리고 싶다. 한국 시장에서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는 디자이너가 과연 파리나 뉴욕 시장에서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 한국의 대중문화가 그랬던 것처럼 패션 한류 역시 그 출발은 바로 한국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한국패션에 대한 국민의 관심 절실

다음 달에 열릴 나의 두 번째 뉴욕 컬렉션을 준비하면서 나는 요즘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실에서 보내고 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어지는 강행군 속에서도 나는 행복한 상상을 한다. 내게 뉴욕 진출의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던 나의 뮤즈 제시카가 내가 디자인한 의상을 입고 뉴욕 무대에서 공연을 하고 세계적 매체의 패션 화보도 함께 찍는 그런 날 말이다. 케이팝과 패션 한류의 뉴욕 랑데부! 생각만 해도 얼마나 멋진 일인가.

손정완 패션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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