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재희]假물막이 ‘임시 물막이’로 바꾸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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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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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희 경인교육대 교수 영어교육과
이재희 경인교육대 교수 영어교육과
얼마 전 대학생들에게 ‘4대강 사업 낙동강 공사장 주변 가물막이 붕괴’라는 글귀를 들려주고 ‘가물막이’의 뜻을 물어보았다. 학생들이 어리둥절해하면서 ‘가뭄막이’를 잘못 쓴 것이라거나 ‘가물 막이’라고 대답한 것을 보면 그 용어 사용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4대강 사업 초창기에 여러 보도에서 한글로 쓴 ‘가물막이’라는 용어가 나왔는데 그 뜻을 몰라서 당황한 적이 있다. 그리고 얼마 전 비가 왔을 때 또다시 언론에 그 용어가 등장해 많은 독자와 시청자들이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어떤 신문은 그나마 ‘구미 취수장 假물막이 터져 구미·칠곡 일대 3일째 단수’라는 제목에 한자를 써서 뜻을 이해할 수 있게 했다. ‘가물막이’라는 용어는 기사 제목을 간략하게 쓰려는 의도에서 쓴 듯하다. 어떤 보도에는 ‘장마 시작됐는데, 낙동강 현장 가물막이 남아’라는 제목을 달고, 본문에서 ‘가물막이는 공사를 쉽게 할 수 있도록 임시로 물을 막은 둑을 가리킨다’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렇게 기사 제목의 용어에 대해 본문에서 잉여적인 설명을 할 것이 아니라 다른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한 포털 사이트의 사전은 ‘가물막이’를 ‘흐르는 물을 막기 위하여 임시로 만들어 놓은 시설물’이라고 정의하고, 북한말로는 ‘림시물막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언론에서 ‘가물막이’ 대신 ‘임시 물막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우리말 사전에 ‘가물막이’라는 낱말이 등재되어 있고, 만약 취재원이 제공한 보도 자료에 그런 용어가 사용되었더라도 언론은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보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술 분야에서 간혹 외국 낱말을 우리말로 번역하기 어렵거나 번역을 하면 그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을 때 소리 나는 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도식(圖式)’처럼 우리말로 옮기면 어색하거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 ‘스키마(schema)’라고 쓰고, 적절한 우리말 용어가 없어서 ‘텍스트(text)’처럼 소리 나는 대로 우리말로 쓰기도 한다.

그러나 불가피한 경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외국 낱말이나 한자말을 사용하는 사례도 볼 수 있다. 어느 공사장의 안내판에 세워진 ‘당 공사 현장에서는 비산먼지를 발생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를 이해하는 데 한참의 시간이 걸린 적이 있다. 위 문구를 ‘이 공사장에서는 먼지가 날리지 않도록 작업합니다’라고 쓰면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얼마 전 TV 야구 중계방송에서 해설자와 아나운서가 말한 ‘네가드’라는 용어를 듣고 무슨 뜻인지 잠시 궁금해했다. 곧 그것이 니가드(knee guard)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무릎 보호대’라고 말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어느 케이블TV의 광고에 나오는 ‘공원에서 워킹할 때…’라는 말에서 ‘워킹’을 ‘걷기’ 또는 ‘걷기운동’이라고 쓰면 훨씬 더 많은 소비자가 알아들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제품의 주요 잠재 소비자가 젊은층이기 때문에 일부러 그 영어 용어를 사용했을 수도 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일상생활에 과도하게 많은 외국어나 알 수 없는 용어들이 들어와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법전이나 법원 판결문의 어려운 법률 용어를 알기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운동이 전개된 적이 있다. 아직도 일부 분야에서는 과거의 관행 때문에, 또는 새로운 기술이나 학문의 도입으로 외국 낱말을 사용하는 것이 편리할 수 있지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할 때에는 쉬운 용어로 바꿔 써야 한다.

방송에서는 출연자가 순화되지 않은 낱말이나 외국어를 쓰면 진행자가 교정해주는 경우를 종종 본다. 신문에서도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용어를 사용하도록 관심을 더 기울이면 좋겠다. 곧 다가올 장마철에 ‘가물막이’라는 용어를 또다시 접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이재희 경인교육대 교수 영어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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