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전염병은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백신의 등장으로 전염병의 위험이 많이 감소했다. 치사율과 전염성이 높은 천연두는 세계보건기구가 백신 개선에 힘을 쏟으면서 1977년 이후 완전히 사라졌다. 소아마비도 백신의 도움으로 극히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환자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196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 수천 명에서 수만 명의 환자가 발생하던 디프테리아, 백일해, 홍역, 일본뇌염 등은 백신 접종을 시작한 이후 현재는 환자가 발생하지 않거나 1년에 10명 안팎의 환자만 발생하고 있다. 위험성이 널리 알려진 B형 간염도 전 인구의 7∼8%가 감염자였으나 백신의 등장으로 3%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백신의 위력은 이 정도로 엄청나다.
개인위생의 발달이나 의료 수준의 향상 등도 감염병의 감소에 영향을 미쳤지만, 감염병이 아예 없어지거나 극히 적은 수의 환자가 발생하는 것은 백신을 꾸준히 사용했기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백신이 모든 질환을 완전히 박멸하는 것은 아니다. 방심하고 예방접종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사라졌다고 생각한 질환이 다시 유행할 수도 있다. 예방접종을 게을리하면 안 되는 이유다.
한국을 포함한 서태평양 29개 국가가 4월 마지막 주를 예방접종주간으로 정하고, 감염병 예방과 예방접종률 향상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미 정부에서는 국민 건강을 위해 만 12세 미만 어린이에게 8종의 필수 예방접종을 지원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영유아 예방접종률은 감염성 질환 퇴치 수준인 95%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연령대별로 받아야 하는 예방접종을 모두 마친 ‘완전 접종률’은 60% 수준에 그쳤고, 추가 예방접종을 제때 받은 경우는 40% 수준에도 못 미쳤다. 보건소를 통하면 무료 접종이 가능하고 일반병원에서도 일정 비용을 지원하고 있는 필수 예방접종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선택 접종의 경우는 접종률이 더 낮다. 대표적으로 뇌수막염(Hib) 백신, 최근 발생이 급증하고 있는 A형 간염, 폐구균 등 필수 예방접종에 포함되지 않은 백신을 일반적으로 선택 예방접종이라고 부른다. 비용 부담이 만만찮은 탓에 효용성을 알면서도 접종률이 그리 높지 못하다. 또 최근에는 한 번의 접종으로 여러 가지 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콤보백신과 신종백신이 개발되어 질병 부담을 많이 경감할 수 있지만 보호자들의 인식과 정부의 지원이 부족해 안타깝다.
꾸준한 예방접종은 위험한 질병을 역사 속 사라진 질환으로 만들 수 있는 위력을 지니고 있다. 예방접종은 개인의 건강 문제이기도 하지만 질병의 유행과 연관이 있는 우리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부는 우선순위를 정해 예방이 반드시 필요한 선택 예방접종도 필수 예방접종 항목에 포함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할 시점이다.
부모도 자녀의 건강을 위해 예방접종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방이 최선의 치료’라는 말을 되새겨 현재의 우리 자녀는 물론이고 후손까지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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