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간 대한민국을 가장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들을 꼽자면 단연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사고, 신정아의 에세이 출간, 그리고 KAIST 교수와 학생 4명의 자살사건이다. 하나같이 불행하거나 유쾌하지 않은 사건들이었고 사건의 주체였던 도쿄전력, 신정아, 서남표 총장은 연일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실수나 잘못을 저질러 위기에 빠진 기업이나 조직의 리더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진심어린 사과를 대중에게 전하는 이른바 ‘공적 사과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진심어린 사과를 제때 적절하게 하지 못해’ 더욱 궁지에 몰린 경우이다.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도쿄전력의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성 물질이 누출된 사고가 일어나 우리나라까지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대지진은 천재지변이라 도쿄전력을 탓할 순 없지만 방사성 물질 누출 사고가 터진 후에 그들이 보인 태도는 최악의 수준이었다.
공적 사과에서 ‘진심어린 사과’란 깊은 유감과 미안함의 표현, 책임의 통감, 보상책 마련, 재발 방지 약속과 개선책 제시 등이 포함돼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도쿄전력은 ‘진심어린 사과’가 가져야 할 덕목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사건이 터진 직후 빠르게 진심을 담아 유감 표명을 하지 않았고, 어떻게 이 사태를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해 솔직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속수무책인 상황이라면 진행 상황을 투명하게 세상에 알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들은 이제야 원전 상황을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위험 수준인 7등급으로 상향 조정하는 등 뒤늦은 대응으로 일본 국민과 우리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실수나 잘못, 돌이킬 수는 없지만
누구나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다면 마땅히 질책과 비판을 받아야 한다. 진심어린 사과를 한다고 해서 이를 피할 순 없다. 다만 실수나 잘못을 저지른 후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대처한다면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위기대응 능력에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도쿄전력은 문제를 해결하는 ‘신뢰의 언어’로서 사과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기업이다.
신정아는 어땠는가. 2007년 여름 학력 위조와 횡령으로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가 감옥에서 출소한 후 자전적 에세이를 출간했다. 그 책에는 주요 정치인의 부적절한 언행, 기자의 성폭행 시도 등 충격적인 사건이 기술돼 있다.
어쩌면 이 책은 ‘과도한 사회적 질타를 받은 신정아의 솔직한 자기 항변’이자 ‘사회적 사건의 주요 당사자의 내밀한 자기 고백’으로서의 가치를 담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한낱 가십거리로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으며 ‘진실성조차 의심받는 치졸한 복수극’으로 비치는 이유는 그가 ‘진심어린 사과’ 없이 세상에 다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가 뒤늦게라도 ‘학력 위조사건’에 대해 솔직히 반성하고 진심어린 사과를 표명하며 그간의 내적 고민과 상처를 우리와 공유했다면, 그리고 조심스럽게 이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면 이 책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4001배쯤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KAIST 서남표 총장도 마찬가지다. 세 번째 학생이 자살한 직후 학교 전체가 모두 침통해 있을 때 서 총장은 학생들에게 처음으로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 자살로 자식을 잃은 유가족과 친구를 잃은 학생들의 슬픔을 위로하고 깊은 유감을 표현했다. 그러나 그의 사과 뒤에는 ‘하지만’이라는 접속사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나중에 이기기 위해 때론 지금 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미국 명문대의 자살률은 우리보다 더 높다’는 훈계가 달려 있었다. 이 말은 일견 옳은 말이지만 엄한 아버지가 자식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일지언정 학생 생활 지도의 행정적 책임을 맡은 총장이 해선 안 될 말이었다. ‘하지만’이 달린 사과는 진심어린 사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심어린 사과’만이 신뢰 얻어
그로부터 얼마 후, 또 한 학생이 세상을 떠났다. 서 총장은 다시 머리 숙여 사과하면서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한 학생의 죽음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여론이 급격하게 나빠진 것도 바로 이 즈음이었다. 그 편지를 읽은 사람들은 그의 확고한 교육철학을 이해했기에 그가 제시했던 제도 개선안에 대해 진정성을 의심했다.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 홀리 위크스는 이런 말을 했다. “사과는 원래의 실수를 더 악화시키고, 때로는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낸다. 상대방이 사과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당신이 통제할 수 없지만 당신 사과의 질은 당신이 통제할 수 있다.”
모든 것이 투명해진 개인미디어 시대, 기업과 정치인, 유명인사, 그리고 모든 리더는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숨길 수 없게 됐다. 솔직히 공개하고, 서로 소통하며, 무엇보다 진심어린 사과를 전해야 한다. 이제 사과는 패자의 언어가 아니라 ‘승자의 언어’임을 깨달아야만 ‘신뢰의 리더십’을 구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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