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회창 대표 원로답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1일 03시 00분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의 ‘대통령 하야(下野)운동 불사’ 발언에 대해 “정교(政敎)분리에 반하는 위헌적인 발언일 뿐 아니라 영향력 있는 대형 교회의 수장으로서 상식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조 목사는 지난달 24일 이슬람채권(수쿠크)법이 계속 추진되면 이명박 대통령 하야운동을 벌이겠다고 한 데 이어 27일에도 “교회에 대적한 국가와 개인은 반드시 망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조 목사의 발언에 대해 ‘교회가 자신의 의견과 다른 견해를 가진 대통령을 협박하는 언동’이라고 비판하기까지는 표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인으로서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 대표 말대로 이 대통령은 기독교계의 표만으로 당선된 것이 아니다. 교회가 자신들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하야시키겠다는 것은 종교의 부당한 정치 개입이 아닐 수 없다.

이 대표는 가톨릭 신자지만 가톨릭 일부 사제의 일탈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았다. 지난해 말 정진석 추기경이 “주교단에서 4대강 사업에 자연파괴 위험이 보인다고 했지만 반대한다는 소리를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을 때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정 추기경의 용퇴를 촉구하는 사상 초유의 항명 사태를 일으켰다. 이 대표는 그때도 “교회의 수장인 추기경을 성토하는 그 용기로 북한 주민의 인권과 자유를 억압하는 김정일과 지도부를 성토하라. 그곳이 바로 순교할 자리”라고 쓴소리를 했다.

수쿠크는 종교가 관여할 이유가 없는 경제 문제인데도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청와대조차 개신교의 표심을 잃을까봐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은 교계에 ‘신세’를 지고 집권하면 ‘은혜’를 갚는 것이 한국적 정교 유착의 부끄러운 현실이다. 4월 재·보선의 표심이 위태롭다고 느낀 한나라당은 벌써 개신교 측에 이슬람채권법안의 사실상 폐기 방침을 전했다고 한다. 이 대표가 “정치가 교회의 협박에 굴복했다”고 비판한 그대로다.

국민은 포퓰리즘이나 당리당략에 흐르지 않고 바른말 쓴소리를 하는 원로의 존재에 목말라 하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이 세상을 뜬 뒤 우리에겐 ‘어른’이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이념과 믿음에 따라 정치 사회가 갈라지고 인터넷 공간에선 참과 거짓이 뒤범벅돼 있다. 혼란스러운 시대에 옳고 그른 것을 분명하게 가리는 원로들의 권위와 지식인의 선비정신이 간절하게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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