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논쟁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해 6·2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이 이슈로 등장한 이래 다양한 부문의 복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이 무상 급식, 무상 의료, 무상 보육에다 반값 대학 등록금이라는 이른바 ‘3+1 정책’으로 불을 댕기자 한나라당이 포퓰리즘으로 몰아붙이며 반박하는 양상이다. 언론도 보편과 선별이라는 이분법적인 복지 논쟁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21일 ‘복지 정책과 언론 보도’를 주제로 토론했다.》 ―복지 문제는 국가적으로 아주 중대한 사안입니다. 정치권은 정파에 따라, 또는 각자의 정치적 실리에 따라 대립하고 대응합니다. 내년엔 국회의원 총선거, 대통령선거가 있으므로 이런 정치 일정에 따라 언제든지 폭발력 있는 이슈로 떠오를 소지가 있습니다. 복지 정책이 자칫 포퓰리즘으로 흐를까 우려되는 이유입니다.
이민웅 위원=선거를 앞두고 있어 포퓰리즘으로 갈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선진국이든 어디든 사람은 공짜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국민이 ‘이건 심하다’ ‘이건 우리를 농락하려는 것이다’ 하고 느낄 수 있도록, 무책임한 정치인들의 말에 넘어가지 않도록 언론이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실현 가능성에 보도의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정성진 위원장=복지 정책은 정당뿐 아니라 정당 내의 정파에 따라, 심지어 사람마다 주장하는 바가 다릅니다. 복지 문제는 워낙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에 국민이 각 쟁점을 쉽게 이해하도록 정리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동아일보가 ‘복지강국이 앓고 있다’ 시리즈에서 외국의 사례를 심층적으로 보도한 것은 매우 유익했습니다.
최영훈 스탠더드에디터=복지 문제는 나라의 미래와 관련해 생각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정치권의 공방을 넘어 무엇이 우리 미래에 맞는 방안인지, 선진국들은 어떤 복지병을 앓았는지, 어떤 나라가 개혁을 잘했는지를 살펴보려고 했으며 참신하고 시의적절한 기획이라고 자평합니다. 복지 정책에는 수많은 변수가 작용합니다. 전문가들조차 국가의 복지 예산 가운데 어느 한 부문만을 추계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전체를 추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역부족인 면이 있었습니다.
윤영철 위원=복지 문제를 놓고 각 정파가 정략적으로 접근하면서 정치적 슬로건과 주장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오는 용어 자체가 문제입니다. 공짜 급식, 무상 급식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지 의문입니다. 또 그 반대쪽에서 말하는 부자 급식, 세금 폭탄이라는 표현도 정치적 의도가 다분합니다. 보편적이니 선별적이니 하는 것도 하나의 개념으로는 그렇게 설정할 수 있겠으나 완전히 보편적인 복지, 보편성을 무시한 선별적인 복지는 없다고 봅니다. 이처럼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간단히 도식화하는 접근법은 매우 위험합니다.
정 위원장=한국개발연구원(KDI)도 ‘복지 정책 조준의 개념과 필요성’이란 보고서에서 이분법적 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며 목표와 제도 설계를 일치시켜 정책 조준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우리 언론이 복지와 소득, 조세 부담의 관계를 얘기하는데 국민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복지 확대에 대한 생각이 자영업자와 봉급생활자가 서로 다르고 세대 간에도 다를 것입니다. 통일 후에도 많은 문제가 생길 겁니다. 국민이 이런 문제들을 실감나게 인식할 수 있도록 보도해야 합니다.
윤 위원=동아일보가 스웨덴이 복지를 축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고 보도하던 날 또 다른 신문은 스웨덴이 복지 덕에 빈부 격차가 줄고 빈곤 문제가 많이 해결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처럼 같은 사례를 놓고 정반대로 쓰는데 둘 다 독자를 설득할 만한 논거가 부족했습니다. 스웨덴과 우리나라 복지를 두루 경험해 본 사람의 얘기를 소개했다면 좀 더 실감 났을 겁니다. 급식 문제에서 선별적 복지를 하면 수혜 학생이 수치심을 느낄 거라고 합니다. 그러나 교육청에 신청하고 학교에 자동으로 통보하는 시스템을 갖추면 누가 공짜로 먹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제도적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데 정서적으로 접근해 논란을 벌이는 것은 무책임하고 위험한 일입니다.
이 위원=노사 문제, 부의 분배 문제, 복지 문제는 각 언론사의 시각에 따라 서로 달리 보도하게 되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보도의 초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동아일보의 시리즈를 보면서 이른바 복지 강국이 복지를 축소하는 이유가 고령화, 청년 실업 확대, 경제 성장의 침체 등으로 우리가 고민하는 부분과 똑같아서 놀랐습니다. 정치인들이 이런 보도에서 나온 지적을 인식하고, 공론의 장에서 복지와 관련한 우리의 사회 정치 경제적 전제를 깊이 검토하고 숙의적 토론을 한다면 접점이나 절충점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복지를 확대하자는 데는 여야 간에 이견이 없다고 봅니다. 다만 규모와 속도를 놓고 의견이 맞서 있다고 하겠습니다. 현행 복지 제도의 문제점과 복지 확대를 저해하는 요소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동철 스탠더드에디터=자영업자의 소득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점이 복지를 확대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고 봅니다. 복지 재원이라는 게 세금에서 나오는 것인 만큼 봉급생활자들은 이른바 유리지갑인 자기들만 봉이 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영업자들의 소득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복지 지출만 늘리게 되면 이들과 봉급생활자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윤 위원=복지의 공정성도 중요합니다. 복지 논쟁을 공정사회 담론과 연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세대 간의 공정성도 보장돼야 합니다. 현 세대가 다 거덜 내면 다음 세대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박태서 스탠더드에디터=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의 문제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르바이트생에게 150만 원 정도를 주려고 하는데 본인이 100만 원 이하로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자기가 많이 받으면 아버지의 기초생활수급 자격이 없어진다는 겁니다. 차상위 계층은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수입이 있기 때문인데 워낙 적다 보니 이들의 어려움이 매우 큽니다.
이 위원=동아일보의 ‘복지강국이 앓고 있다’ 시리즈를 보면서 지난해 보건사회연구원의 ‘남유럽 재정 위기로 본 유럽모델의 지속 가능성’ 보고서의 현장을 확인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외국의 실제 사례를 소개하는 데 초점을 맞췄는데 앞으로는 우리가 거치게 될 과정에서 등장할 쟁점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복지와 생산성의 상관관계, 선별적 복지 정책을 펴면 보편적 복지는 철폐되는지, 복지 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어느 정도가 적절한지 등의 문제를 심층취재해 보도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정부의 정책 수립에 시사하는 바도 클 것입니다.
최 스탠더드에디터=야당의 보편적 복지 주장에는 무책임한 것도 있고, 맞는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여당의 비판 역시 맞는 부분도 있지만 너무 소극적인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언론은 국민이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이런 문제들에 대해 심판관 노릇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겠습니다. 정 위원장=복지 문제는 앞으로도 늘 정치 사회적 현안이 될 소지가 많습니다. 언론이 여론을 모아 정치적으로 반영되게 해야 합니다. 워낙 복잡한 문제인 만큼 국민이 이해하기 쉽게, 또 정책 담당자들이 뭔가 좀 아프게 깨닫도록 보도해야 합니다. 동시에 정치인들이 공론의 장에서 숙의할 수밖에 없게끔 유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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