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토끼풀 뜯는 주민, 클랩턴 공연에 취한 김정철

  • 동아일보

북한 체제는 왕조(王朝)라고 보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왕조시대의 왕족과 귀족 사회처럼 사회가 계층화돼 있고 김정일 일가는 그 정점에서 최고의 호사를 누린다. 공식적으로는 왕조시대의 칭호를 쓰지 않지만 하는 행태를 보면 김정은은 왕세자이고 김정남 김정철은 왕자다. 김정은이 김정일에게 왕위를 물려받으면 김정남과 김정철은 대군(大君)이 될 것이다.

김정일의 차남 김정철이 14일 영국 가수 에릭 클랩턴의 싱가포르 공연 현장에서 한국 언론에 포착됐다. 그는 수십 명을 대동하고 그곳에 머물며 돈을 펑펑 썼다. 김정철이 클랩턴을 접한 것은 청소년기인 스위스 유학 시절로 보인다. 클랩턴이 1992년 죽은 아들을 그리는 ‘티어스 인 헤븐(Tears in Heaven)’이란 노래로 컴백한 시기에 김정철은 ‘기타의 신’으로 불리는 그에게 빠져든 것으로 보인다. 곡기가 떨어져 주민이 굶주리는 나라에서 최고지도자의 아들은 외국 저명 연예인의 공연을 보며 해외 유람을 다니고 있다.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도 2001년 이후 중국과 마카오를 오가며 호화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이 세계의 부호들 부럽지 않게 뿌리는 돈은 모두 김정일의 금고에서 나온 것이다. 김정일은 3남 김정은의 후계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장남은 장기 해외체류, 차남은 외국스타 공연 관람이나 하며 돌아다니도록 조치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정남 김정철은 왕조시대에 형제가 왕이 되면 역모에 연루되지 않기 위해 도성을 떠나 유람하던 대군 흉내를 내는지도 모르지만, 이들의 호화 사치 행각에 분노가 치민다.

나이를 한 살 줄인 김정일의 69세(실제로는 70세) 생일인 어제 한나라당 의원 9명이 북한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전단 10만 장을 북한으로 날려 보냈다. 전단에는 김정일과 두 아들 김정남 김정은의 살찐 모습과 토끼풀로 연명하다 굶어죽은 ‘토끼풀 소녀’의 사진이 나란히 실렸다. 오늘의 북한은 ‘뚱땡이 공화국, 인민들은 굶주려도 김정일과 그 자식들은…’ ‘인민들은 옥수수도 없어 토끼풀을 뜯어먹으며 살아간다’는 사진 설명 그대로다.

김일성 체제와 비슷한 우상화를 자행한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에게도 두 아들이 있었다. 차남 니쿠는 후계자로 선택된 후 음주와 여성 편력으로 일관하면서 당과 정부의 고위직을 지내다 공산주의 붕괴 후 20년형을 선고받았다. 김정은 김정남 김정철 형제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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