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상조]누가 작가-연예인을 죽였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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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조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상조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어느 시나리오 작가의 외로운 죽음은 우리에게 커다란 슬픔과 충격을 던져 주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졸업 후 단편영화 ‘격정소나타’를 연출하며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며칠 새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은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드려 주세요’라고 이웃집에 메모를 남기고 자신의 월셋집에서 외롭게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은 우리 문화계의 심각한 문제점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전국영화산업노조는 성명을 내고 “고인의 죽음 뒤엔 창작자의 재능과 노력을 착취하고 이윤 창출의 도구로만 쓰려는 잔인한 대중문화산업의 논리가 도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모든 산업의 속성은 적자생존의 법칙에 지배되고 있는 잔인하고 치열한 전투 현장인 것이다. 문화산업은 다른 산업보다 빈부 격차가 크고 성공 확률이 더 낮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자신의 자녀가 연예계로 가겠다고 하면 대부분의 부모가 반대하는 것 아닐까. 예술가 또는 연예인 되는 것이 서울대 로스쿨 들어가서 사법시험 합격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현실이다. 사법시험 합격생은 매년 1000명씩 나오지만 스타 작가나 스타 연예인은 몇 명 되지 않는다.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시나리오 작가의 사망 사건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하며 영화산업 근로자 처우 개선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예술인복지법을 제정하면 처우가 개선될 수 있을까. 작가들에게 영화기금을 나눠주면 킬러콘텐츠가 생산될 수 있을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작가의 죽음을 막기 어렵고 또 다른 달빛요정의 좌절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문화계의 근본적인 문제는 작가나 연예인의 가치에 대한 공정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가의 아이디어가 무단 도용되고 방송국이나 기획사의 표절이 빈번히 발생하면, 작가나 연예인의 복지는 공허한 것이다. 이제 국내 문화산업도 공정한 룰과 선진적인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

우선 작가의 아이디어는 작가의 재산이다. 눈에 보이는 땅이나 건물만이 재산이 아니고 그보다 더 값진 재산이 아이디어라는 인식이 보편화되어야 한다. 작가의 아이디어를 들어보고 좋다고 생각해 작품 제작에 활용하면서도 아무런 보상을 하지 않는다면 작가들은 아이디어의 생산을 멈추거나 숨기려 할 것이다. 아이디어의 생산과 거래가 활성화돼야 킬러콘텐츠가 제작돼 한류문화의 수출이 지속될 수 있다.

작가는 한 줄의 감동적인 문구를 표현하기 위해 뼈를 깎고 피를 말리는 작업을 한다. 드라마나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고 해서 그 뒤에 숨겨진 표절에 온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충분한 제재를 하지 않는다면 승자 독식과 재능 있는 작가의 죽음이라고 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 성공에 따른 수익이 발생하면 그것에 기여한 작가들에게 수익의 일부를 보상하는 것이 공정한 사회와 선진 문화산업으로 발전하는 길이다.

작가들이나 연예인들이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주장하고 지키기는 어렵다. 음악저작권협회처럼 집중관리 단체가 효율적으로 권리를 집행하고 수익을 배분해야 한다. 그러나 달빛요정이 생전에 음원 수익을 거의 받지 못한 사실이 말해주듯 집중관리 방식의 선진화가 필요하다. 현재 정부가 집중관리 단체의 허가제를 통해 특정 단체의 독점을 유도하고 있는데, 이는 집중관리의 선진화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작가와 연예인은 경제적 약자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아이디어와 창작적 표현이 공정하게 보상받길 원할 뿐이다. 공정한 보상은 업계의 인식 전환과 법제도의 선진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을 계기로 문화산업의 선진화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정상조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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