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우리 삶의 관계는 어떠한가. 보잘것없는 하찮은 역사와 자랑스러워할 큰 역사가 모두 우리들의 나날의 삶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엄혹한 일이다.
작년 초의 일이다. 모 방송국의 다큐멘터리 프로 전문 PD가 전화를 했다. 그는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아서 지난 격동의 세기에 동양의 역사를 이끌어갔던 동양 삼국의 중요 인물들을 나란히 집중 조명하는 프로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중국은 이홍장(李鴻章), 일본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그런 식으로 중국과 일본의 대표적 인물들은 즉각 떠오르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더라는 거였다. 그는 나에게 동양사에 큰 족적을 남긴 그들과 맞먹는 정도의 역사적 비중을 지닌 우리나라 인물로서 누구를 추천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통화한 뒤 여러 달이 지나도록 그의 질문이 마음에 남아서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당대의 동양사를 살펴보면 100여 년 전의 난세를 살았던 여러 인물이 남긴 행적이 큰 북소리처럼 시공을 울리고 있다.
이홍장은 한인(漢人)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청 제국의 대신으로서 국정과 외교를 전담했던 인물이다. 청일전쟁의 실체를 아는 이들은 “청일전쟁은 청과 일본이라는 나라 대 나라의 전쟁이 아니라 이홍장의 군대인 북양군벌 대 일본국의 전쟁이었다”고 갈파한다. 그는 청일전쟁의 강화회담에서 전권을 갖고 협상에 임했던 청국 최고의 실력자였다.
李垠인질잡기 伊藤의 우회책략
이토 히로부미는 현대 일본의 틀과 기초를 만든 사람이다. 그는 일본헌법을 만들었고 내각제를 창설해 초대 총리대신 겸 궁내부대신이 된 이래 네 번이나 총리대신을 지냈다. 추밀원을 창설해 초대 의장을 지냈고, 국회를 창설해 초대 귀족원 의장을 맡는 등 일본이 현대적 형태의 입헌군주국가 체제로 정착하는 토대가 된 주요 국가기관들이 모두 그의 머리와 손에 의해 창설되고 운용됐다.
같은 시기 우리나라에서는 동양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 나오지 못한 반면에 그들은 어찌하여 역사에 그렇듯 크게 이름을 올린 인물이 된 것일까. 대한제국 시대에 관해서 공부하다가 이토 히로부미의 행적에서 그 해답의 일단을 찾았다. 그가 대한제국을 삼키기 위한 전략의 하나로 1907년 12월 5일에 대한제국 황태자 이은(李垠)을 일본으로 데려가 인질로 붙잡아 두었던 일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가 이은을 일본에 데려간 과정을 보면 시사하는 것이 크다.
당시 그는 일본의 막강한 국력과 군대의 힘을 빌려 이은을 그냥 쉽게 끌고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일본 황태자가 먼저 친선방문이란 명목으로 대한제국에 놀러왔다 가게 만들었다. 요즘 세상에서는 각국의 황태자들이 일상적으로 외국에 드나든다는 식의 여건을 미리 조성해놓은 다음에 이은을 일본에 데려가려 한 것이다.
그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유사 이래 일본 황태자가 외국에 나간 일이 전혀 없는 데다 당시 한국에는 의병이 각지에서 봉기한 상태라서 치안이 매우 불안했기 때문에 일본의 조야는 물론이고 메이지(明治) 천황까지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이토 히로부미는 모든 반대를 물리치고 일본 황태자의 대한제국 방문을 선행(先行)시켰다. 그로부터 한 달여 뒤에 그가 대한제국 황태자 이은을 일본으로 데려갈 때 한국 국민은 별다른 저항이나 반발을 하지 않았다.
물론 그가 취했던 그런 전략은 오직 일본의 국익만을 위했던 것이고, 결국은 대한제국의 멸망으로 이어진 사악한 침략전쟁의 일부였다. 그러나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반면교사로서의 효과가 대단하다. 당시 그가 어린 황태자 이은을 강제로 일본에 끌고 갔더라면 대한제국 측의 엄청난 반발과 전국적인 강력한 저항이 일어났을 것이고 이후 사태는 일본 측에 몹시 고통스럽게 전개됐을 것이다. 그는 그런 결과를 명료하게 내다보고 그런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대비하는 데 성공했다. 그처럼 사물을 폭넓게 바라보고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남다른 능력이 결국 그를 일본의 영웅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큰 정치인 안 보이는 요즘 이 나라
다툼이 있는 경우 상대방의 입장과 상황까지 바라보고 그에 대응한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시야의 문제이다. 그런 시야가 확보되어 있을 때,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한 수 위의 처신을 하게 되고 큰 업적을 이룰 수도 있게 된다.
요즘 우리나라 대다수 정계 지도층 인사의 처신을 보면 무척 답답하다. 정치적 반대자의 입장과 상황까지 헤아려 되도록 적은 후유증을 겪으면서 나랏일이 성사되도록 크게 대처하는 일은 찾아보기 어렵고, 어떤 사안이든지 비상하게 독을 품은 코멘트로 깎아내리기를 잘하는 이들을 대변인으로 중용하고 있다. 이런 풍토에서는 누구든 역사에 이름이 오르는 큰 인물로 성장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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