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성원]四字成語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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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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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은 해마다 정초에 붓으로 직접 쓴 신년휘호를 발표했다. 혁명완수(1962년) 근면검소(65년) 유비무환(72년) 국력배양(73년) 국론통일(75년)처럼 실용적 구호에 가까웠다. 서예를 즐겼던 김영삼 전 대통령도 매년 새해 아침 신년휘호를 내놓았다. 문민개혁의 서슬이 퍼렇던 94년엔 ‘제2의 건국’을,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결별하던 95년엔 ‘대도무문(大道無門)’을, 외환위기 극복이라는 숙제를 남겨놓고 퇴임하던 98년엔 ‘제심합력(齊心合力)’을 제시하는 것으로 흉중(胸中)을 드러냈다.

▷청와대가 2011년 신묘년의 화두(話頭)로 ‘일기가성(一氣呵成)’을 내놓았다. 일을 단숨에 매끄럽게 해낸다는 뜻이다. 국운융성의 절호의 기회를 맞아 국민이 단합해 선진국 문턱을 막힘없이 넘어가자는 기원을 담았다고 한다. 조금 쉬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에 ‘시화연풍(時和年豊·나라가 태평하고 풍년이 들다)’을, 2009년에는 ‘부위정경(扶危定傾·위기를 맞아 잘못을 바로잡고 나라를 바로세우다)’을 내놓았다. 연초 내세웠던 화두들이 실현됐는지에 대해서는 따져봐야 할 것이다.

▷친이(친이명박)계 실세인 이재오 특임장관은 신년휘호로 ‘약시우강(若時雨降·때맞춰 비가 내린다)’을 내놨다. 올해는 안보를 다졌으니 내년에는 북한과 대화할 때가 됐다는 뜻이라는 본인 설명과 달리 조기 대선행보에 나선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해 ‘때가 이르지 않으냐’고 견제구를 날린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직원들에게 ‘선즉제인(先則制人·남보다 먼저 도모하면 능히 앞지를 수 있다)’이라는 화두를 제시하며 글로벌 리스크 감시와 선제적 대응을 당부했다.

▷일부 정치인들의 사자성어(四字成語) 가운데는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아서 말장난처럼 느껴지는 것도 없지 않다. 그러나 잘 고른 신년 사자성어를 뜯어보면 그 사람의 새해 인식과 전망, 의지를 헤아려볼 수 있다. 요즘 젊은 세대는 한자 교육이 부실한 탓인지 사자성어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한자에는 소리글로 표현할 수 없는 압축미가 있다. 일부 정치인이 “죽여버려야 한다”와 같은 험한 말들을 세밑에 쏟아냈다. 정치인들이 꼭 사자성어가 아니더라도 격조 있는 언어로 소통을 하면 정치의 격도 높아질 것이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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