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9일 저녁부터 서울광장에서 범국민 서명운동을 겸한 100시간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민주당은 광장 한쪽에 4개의 천막을 치고 ‘이명박 독재심판! 국민과 함께!-4대강예산·날치기법안 무효화를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이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행인은 종종걸음으로 스쳐 지나갔다.
국민은 1997년에 김대중 정권을, 2002년엔 노무현 정권을 선택해 각각 5년간 국정을 위임했다. 2004년 열린우리당이 국회 다수당이 된 것도 국민의 선택이었다. 국민은 2007년 이명박 정권을 선택했고, 2008년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에 절반이 훨씬 넘는 의석을 준 반면 민주당에는 3분의 1도 안 되는 의석만 주었다. 그런데 민주당은 국회에서의 다수결 표결을 완력으로 막다가 돌파당하자 거리로 쏟아져 나와 “이명박 독재”를 외치고 있다.
소수 의석의 야당이 다수 의석의 여당을 물리력으로 제압하는 것이 민주주의인가. 이런 행태야말로 선거 민의(民意)를 부정하는 반(反)민주 의식의 발로다. 국민은 지난 6·2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 일정한 승리를 안겼다. 그 결과에 불만이 있다고 한나라당 사람들이 길거리로 몰려나와 “좌파 교육감과 민주당 소속 시도지사를 심판하자”고 외친다면 냉소밖에 더 사겠는가. 민주당은 지금의 모습이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 스스로 돌아보기 바란다.
한나라당은 허겁지겁 예산안을 통과시키느라 자신들의 역점 예산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저출산 대책의 핵심사업 중 하나인 영유아 필수예방접종 확대 예산, 서민 대책을 위한 방학 중 결식아동 급식 지원과 중산층까지의 영유아 양육비 지원 예산도 공중에 날려버렸다. 그러면서도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의 지역구가 있는 포항과 연계된 예산을 비롯해 박희태 국회의장, 이주영 예산결산특위 위원장 등 핵심 인사들의 지역구 관련 예산은 많이 반영했다. 박지원 원내대표, 조배숙 최고위원, 서갑원 의원 등 민주당 인사들과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의 지역구 관련 예산도 챙겨줬다. 예산 심의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오점을 찍은 사례들이다.
그러고도 한나라당은 개헌 군불 때기로 국면 전환을 시도하는 양상이다. 지금 개헌이 절실하다고 통감하는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그보다 시급하게 여야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안보 경제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당장 눈앞의 안보 위기 속에서 여야가 공허한 정치놀음이나 하는 모습은 국민을 더욱 화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