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면조 통구이에 크랜베리 소스, 한국식 생선찜과 오이소박이가 식탁 위에서 사이좋게 이웃하고 있다. 지난달 뉴욕에 갔다가 미국의 큰 명절인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을 맞아 교민 가정의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다. 미국에 정착해 30년 넘게 의사로 활동 중인 주인장은 가족 및 친구들과 함께 감사를 나누는 귀한 자리에 고국에서 온 낯선 기자를 기꺼이 불러주었다.
첫 만남이지만 한민족이 무언지 금세 허물없는 대화의 꽃이 피어났다. 건강에 대한 화제로 시작해 연평도 포격 사태가 미칠 파장을 한참 동안 걱정하다 헤어질 무렵, 옆자리에 앉은 칠순의 교포 시인이 내게 말했다. “그래도 다음 주면 서울에 돌아간다니 얼마나 좋으세요? 자기 나라에서 살 수 있다는 것도 참 행복한 거예요.”
그러자 다른 분들도 부럽다는 표정으로 한마디씩 거든다. 돌아갈 집과 직장이 한국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지에 대해 모두가 온몸으로 동의했다. 이민 초기의 교포였다면 팍팍하고 고된 생활에 지쳐 해보는 얘기이겠거니 흘려 넘겼을 테지만 이제는 장구한 세월 미국 사회에 튼튼히 뿌리내린 분들의 말씀인지라 돌아온 뒤에도 머릿속으로 자꾸 곱씹게 된다. 물과 공기, 가족과 일. 뻔뻔할 만큼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존재들. 제대로 고마움을 표현할 새도 없이 지나쳐 온 소중한 것들을 깨치는 기회였다. 이 땅에서 태어나 매일같이 내 나라 말을 쓰고 나와 똑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과 지지고 볶아가며 어울렁더울렁 사는 일을 지겨워하는 사람들만큼이나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도.
한 뼘씩 닳아 사라지면서 더욱 빛나는 이 한 해의 끄트머리. 내게 주어진 행운과 축복을 하나하나 헤아리다 보니 짚고 넘어갈 숙제가 또 하나 생각난다. 뜻하지 않게 나의 뾰족한 뿔로 들이박아 타인의 가슴에 흉터를 남긴 일을 돌아보고 미안함을 전하는 일이다. 호주에는 백인 이주민들이 원주민을 박해했던 역사를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사과의 날(National Sorry day)’이 있다는데 나 역시 한 해를 정리하는 마음으로 나만의 ‘사과의 날’을 정해 볼까 한다.
용서를 구하는 일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평범한 할머니였다가 아흔 넘어 일상의 소중함을 시로 발표하면서 이름이 알려진 99세의 일본 시인 시바타 도요 씨의 ‘말’이란 작품을 떠올려본다. ‘별 생각 없이/한 말이/사람을 얼마나/상처 입히는지/나중에/깨달을 때가 있어/그럴 때/나는 서둘러/그 사람의/마음속으로 찾아가/미안합니다/라고 말하면서/지우개와/연필로/말을 수정하지’
아낌없는 사과가 중요하듯 타인이 내게 준 고통에도 관대한 자세를 가질 일이다. 용서란 단지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사랑이라고 달라이 라마는 말했다.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을 향한 미움과 원망의 마음에서 스스로를 놓아주는 일이라는 얘기다.
늘 그렇듯 기쁨의 찰나와 함께 힘겹고 후줄근한 나날도 많았던 한 해. ‘고비 사막에 가지 않아도/늘 고비에 간다/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내일 죽을 것처럼 살면서/오늘도 죽을 고비를 겨우 넘겼다/이번이 마지막 고비다’(정호승의 ‘고비’)
이렇듯 하루하루 험준한 산을 넘은 끝에 기적같이 한 해를 봉(封)하는 통과의례 앞에 다시 섰다. 등짐을 내려놓듯, 마음속 앙금을 다 털어내고 몇 날 남지 않은 12월은 고요하고 눈부신 첫눈 같은 순간으로 채우고 싶다. 언젠가 라디오 방송에서 접한 정목 스님의 말씀을 한 번 소리 내어 되새겨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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