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총선과 대선부터 재외국민 투표가 허용된다. 1972년 유신정권이 부재자 가운데 외국 거주 유권자를 제외한 후 40년 만에 재외국민의 참정권이 부활한 것이다. 재외국민 유권자가 240만 명에 이르니 선거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특히 대선의 경우 박빙의 승부전이 펼쳐진다면 재외국민의 표심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 상황을 예상하면 재외국민 투표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14, 15일 전 세계 26개 해외공관에서 재외국민의 첫 모의투표를 실시했다. 일본의 투표율은 비교적 높은 63%를 기록했으나 뉴욕은 25% 남짓에 그쳤고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의 경우 835명의 등록자 가운데 90명만 투표에 참가했다. 지난해 중앙선관위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19세 이상 재외국민 240만 명 가운데 167만 명(70%)가량이 선거인 등록을 하고, 134만 명(등록자의 80%) 정도가 투표에 참여할 것으로 전망됐는데 모의투표라고는 하지만 투표율은 너무나 낮았다. 이처럼 낮은 투표율이라면 재외국민 참정권 보장이라는 의미가 퇴색할뿐더러 일부 정파에 의한 동원투표로 결과가 왜곡될 가능성도 높다.
투표율이 낮은 첫 번째 이유는 투표의 편의성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이다. 현행법은 투표소를 재외공관으로 제한해 원거리 거주자가 투표할 수 없다. 또한 해외거주자는 선거인 명부를 미리 작성한 국내와 달리 관할 공관을 직접 찾아가 선거인 등록을 마쳐야 한다. 한국 면적의 100배에 가까운 미국 땅에 투표소를 10개 공관으로 한정해 놓고 사전등록하고 투표하라는 것은 사실상 투표를 하지 말라는 말과 다름없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우편 투표, 인터넷 투표, 순회투표소를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인터넷 투표와 우편 투표의 경우 국내에서도 시행하지 않고 안전성의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만큼 중요 선거에 도입하기에 부담이 큰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평등한 투표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제한된 방식으로나마 도입할 필요가 있다.
가령, 인터넷 투표는 보안과 비밀유지의 문제가 있으나 유권자등록을 온라인으로 하는 방안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또한 재외공관에서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유권자에 한해서 우편 투표를 허용하는 방안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예산과 인력의 문제가 있지만 대도시에 한해서 순회투표소를 설치하는 방안도 바람직하다. 어떤 형태로든 유권자가 쉽게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적극적인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투표율과 함께 우려되는 부분은 공정선거의 문제이다. 외국의 경우 국내처럼 선거법 위반을 감시하는 일이 여의치 않아 불법 선거운동에 대한 대처가 쉽지 않다. 더욱 우려되는 부분은 선거가 과열되면서 교민사회가 분열되고 서로 반목하는 상황이다. 한인회장 선거를 둘러싸고도 이런 상황이 종종 발생하니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불법, 과열선거를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은 정책선거뿐이다. 정파적 싸움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유권자 개개인이 정당과 후보에 대해 정확히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유권자에게 후보자와 선거공약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해외 거주자의 경우 국내 사정에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들을 위해서 선거운동 기간을 국내에 비해 더 연장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무엇보다 재외국민 투표에서는 온라인 선거운동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 투표권을 허용하는 정책보다 더 중요한 점은 올바른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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