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이현진]중국의 눈에 보이는 한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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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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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스스로를 동북아 국가로 본다. 일본은 스스로 동아시아 국가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중국은 아시아 국가라고 하겠다.”

왕지쓰(王緝思) 중국 베이징(北京)대 국제관계학원 원장은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공개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가 정색을 하고 한 말은 아니다. 농담 반(半), 진담 반이었고 강연을 듣던 한중 양국 대학생들은 함께 웃었다. 합리적이고 온건한 주장을 펼쳐온 그는 “나는 가끔 중국 중심 사고를 한다. 내게 아시아란 중국과 주변 국가를 말한다”고 덧붙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 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올해 8월 ‘중국의 내일을 묻다’라는 제목의 책을 내놨다. ‘중국 최고 지성들과의 격정토론’이라는 부제에서 보듯 지난해 베이징대에서 한 학기 겸임교수를 지내며 가진 중국 대표 지성들과의 토론을 무삭제로 실었다. 그는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을 중국과 동등하게 보는 중국인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은 “중국은 한국의 제1무역 상대국이고 한중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며 “중국은 한국을 이에 걸맞게 대접하고 있나”라고 묻는다.

중국은 대답한다. “지난해 중국 전체 수출액 중 한국 비중은 4.5%에 불과하다. 중국 31개 성시 중 하나인 광둥(廣東) 성의 소득이 조만간 한국 전체를 제칠 수도 있다.”

한국이 보는 중국과 중국이 보는 한국은 이처럼 다르다. 게다가 이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국제적 위상과 자신감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문 교수는 그의 책에서 중국이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949년(중국 성립)에는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고 1979년(개혁개방 시작)에는 자본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으나 1989년(톈안먼 사태)에는 중국만이 사회주의를 구할 수 있었고 2009년(금융위기)에는 중국만이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다.”

한국은 세계 15위의 경제대국이고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주최하는 나라다. 타국의 원조에 의존해 살다가 50년 만에 원조를 하는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나라다. 한국이 남미에 있었다면 국내총생산(GDP) 수위(首位)를 다투는 강국이고 아프리카에서는 압도적인 1위다. 유럽에서도 한국보다 경제규모가 큰 나라는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정도다.

하지만 한국의 이웃나라는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이라는 4대 열강이다. 모두 한국보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세다. 세계패권을 잡았거나 다투는 국가다.

올해 들어 중국이 미국 일본 등과 도처에서 티격태격한다. ‘희토류’ 하나로 일본을 무릎 꿇렸다. 미국이 남중국해 개입 의사를 분명히 하자 중국 인민해방군은 최근 남중국해에서 대규모 실탄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또 위안화 환율 절상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로 중국 부활의 토대를 닦은 덩샤오핑(鄧小平)은 생전에 “앞으로 50년간 조용히 힘만 기르라”고 당부했다. 현재 중국의 모습은 이 말과 거리가 멀다.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 간의 힘겨루기는 이처럼 한창 진행 중이다. 그 중심에는 중국이 있다. 게다가 부활한 중국의 눈에 이웃나라인 한국의 존재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

100년 전 열강의 격돌로 한반도는 일본 식민지로 전락했고 60년 전 열강의 격돌에 한반도가 불바다로 변했다. 중국을 제대로 보고 공존의 길을 찾는 것에 한반도의 미래가 달려 있다.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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