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서현]묵비권… 독설… 법정 무시한 PD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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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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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훼손 사건 재판에 수사 검사가 4명이나 법정에 나온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 사건 수사 이후 여기 계신 네 분이 모두 대검찰청, 법무부 등 좋은 보직으로 영전하셨다고 합니다.”

28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421호 법정에서 MBC 조능희 책임프로듀서(CP)가 최후 진술을 하면서 작심한 듯 검찰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조 CP는 기소한 검사들을 가리켜 ‘정치 검찰’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검찰 측은 조 CP의 최후 진술을 도중에 끊고 “정치 검사라니요!”라며 삿대질을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재판장이 “상대방 당사자에 대한 예의를 갖춰 달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격앙된 분위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런 장면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과장·왜곡 보도한 혐의(명예훼손 등)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던 MBC PD수첩 제작진 5명에 대한 항소심 법정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제작진은 수사 단계부터 진술을 거부해왔고, 피고인 신문의 파행을 우려한 재판부는 이전 공판 때 “피고인이 답변하지 않더라도 검찰이 위압적, 모욕적 신문을 하지 않는 범위에서 검찰의 신문권을 보장하겠다”고 중재안을 내놓은 상황이었다.

재판부의 중재로 검찰과 제작진의 입씨름이 잦아드나 했더니 제작진은 검찰의 신문에 항의하는 취지로 퇴정을 하겠다고 밝혀 재판이 중단되기도 했다. 가까스로 피고인 신문이 시작됐고 검사 3명이 번갈아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제작진은 한마디도 답변하지 않았다. 눈을 내리깔고 바닥을 내려다보며 검사와 눈도 마주치지 않거나, 일부 피고인은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조 CP는 이날 피고인들을 대표해 최후 진술을 했다. 항소심에서 피고인들의 목소리를 들을 사실상 유일한 기회였으나, 검찰에 대한 공격성 발언으로 일관했다. 하루 수백 건의 재판이 진행되는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이 파행을 빚는 것은 드문 일도 아니다.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재판장에게 소리를 지르고 민사재판의 원고, 피고가 주먹다짐을 하기도 한다.

PD수첩 제작진은 검찰의 부당한 기소로 재판을 받게 된 것 자체가 온당치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신성한 법정의 격을 떨어뜨리는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PD수첩 제작진이 항소심 내내 강조한 원칙과 정도를 걷는 언론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언론인답게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품격 있게 전달했더라면 죄의 다툼을 떠나 언론인에 대한 최소한의 존경은 받지 않았을까.

이서현 사회부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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