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기부자들이 나눔으로 복지사업을 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성금 분실과 장부 조작, 공금 유용 등 각종 비리 소식이 들려와 안타까운 마음이다. 밝혀진 비리나 부정 형태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이미 상당 기간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다른 비도덕적인 부정사건과 차이가 없는 소위 전형적인 도덕 불감증의 결과로 나타나는 범죄라는 점에서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특히 과거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창립을 위해서 보건복지부의 예산 일부 정도로 인식되었던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독립시키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제대로 된 민간기관으로 정착하는 데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은 많은 전문가와 학자가 느끼는 감정은 허탈 그 자체일 것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입장에서는 반론도 제기하고 싶을 것이다. 요즘 금융기관이나 일반 기업에서 엄청난 돈을 횡령하는 사건이 비일비재한 상황에서 사회복지기관이 예외일 수 없다고 할 수도 있고 액수에 비해 너무 도덕적 잣대가 엄격한 것 아니냐며 슬그머니 묻어두고 모른 척 넘어가고 싶은지 모르겠다. 더구나 내부 감사에서 적발했으니 그리 큰 문제는 아니라고 볼멘소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복지기관이 다른 기관과 달리 도덕적으로 엄격하고 엄정하여야 하는 이유가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모금하는 기금의 출발은 불우이웃돕기 성금이다. 잘사는 사람이 돈을 더 벌기 위해서 투기한 돈이나 요행을 바라고 사는 금융상품과는 차원이 다른 ‘성금’이다. 불우이웃돕기사업은 민간이 자발적으로 모금해서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 그리고 가장 위급한 상황에 있는 사람을 우선 대상으로 지원하는 목적을 가진 사업이다.
이를 횡령하거나 유용하는 것은 소외된 계층에 전달해야 할 지원이나 도움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파렴치한 행위가 된다. 우리나라의 공공부문이 담당하는 사회복지사업이 아직도 열악한 상황에 있음을 생각할 때, 기부금으로 모은 성금이 이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소외된 사람의 인간다운 삶이 치명적으로 위험해질 수 있는 생계형 지원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또한 이번 일로 더욱 걱정이 되는 것은 민간사회복지사업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되는 성금이 초기에는 기업이 대부분을 차지하여 기업이 부담하는 준조세라는 비판까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모금액이 3300억 원 규모이고 개인 기부액이 40%를 차지해 명실공히 민간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민간사회복지사업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민의 기부문화가 바뀌고 있으며 사회복지에 대한 의식이 성숙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희망적인 변화이다.
이러한 국민의식의 성숙은 모금 운영에 대한 평가와 판단이 더욱 엄격함을 요구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민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불신하면 기부에 대한 냉소주의가 나타날 가능성뿐만 아니라 이미 정부의 발표처럼 현재의 독점체제를 다양화하겠다는 정책이 고민 없이 쉽게 결정되는 문제도 생긴다. 장기적으로는 복지부가 과거처럼 직접 사업을 하겠다고 나설 수 있다.
아직은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은 이유는 내부 감사에서 적발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랬으니 문제가 없다고 하는 태도는 철저히 버려야 한다. 오히려 국민은 그 태도에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도덕 불감증을 더욱 우려할 것이다. 겸허하게 고개 숙여 백배사죄하고 우리 사회에서 순수하게 살고자 하는 대부분의 국민과 어렵지만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소외된 계층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들의 중간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