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강희남을 보낼 때와 황장엽을 보낼 때

  • 동아일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 좌파 정당들은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빈소 조문과 관련해 “계획이 없다” “논의한 바 없다”고 밝혔다. 진보신당은 어제 고인에 대한 정부의 훈장 수여와 국립현충원 안장 결정을 비판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지난해 6월 이적단체인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초대 의장 강희남이 자살했을 때 이들이 ‘그의 뜻을 잇겠다’며 경쟁적으로 애도 성명을 낸 것과 대비된다. 강희남은 각종 친북 이적단체의 대표로 활동하며 맥아더 동상 파괴 집회를 주도하는 등 반미친북 활동에 앞장섰다. 북한을 자신의 조국이라고 불렀던 그는 “핵이 없으면 주권도 지킬 수 없다”며 북한의 핵 포기도 반대했다.

강희남 사망 당시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이명박 정권의 강압통치가 또 한 사람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가고 말았다. 애통하고 원통하다”고 논평했다. 진보신당은 “고인은 갔지만 유지는 살아남아 나라의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앞당길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대변인은 “조국의 평화통일과 이 땅의 완성된 민주주의는 살아있는 죄스러운 우리들의 몫이 됐다”며 “우리는 당신이 못다 이룬 뜻을 이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당시 “숭고한 정신을 받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큰어른이 돌아가셔서 슬픈 마음을 나누려고 왔다”며 조문했다. 이들은 세습왕조 북한이 꾀하는 남한 적화통일의 앞잡이를 칭송하고 우리 국민은 그의 죽음 앞에 죄스러움을 느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어제 황 씨의 빈소를 찾은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망자에 대한 너그러움은 우리가 가진 미풍양속”이라고 말했다. ‘망자에 대한 너그러움’ 운운하는 표현은 황 씨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 사실을 왜곡한 결례일 뿐 아니라 북한과 친북 좌파를 향해 ‘마지못해 황 씨의 빈소에 갔으니 양해해 달라’는 투의 언사다.

1997년 한국에 귀순한 황 씨는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북한이 저지른 각종 국가범죄를 폭로하고 북한 실상을 증언했으며 북한 주민의 해방과 자유민주 통일을 위해 활동했다.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세습 왕조를 떠받든 강희남을 애도하는 데는 열성적이었으면서 황 씨에 대한 조문은 꺼리는 좌파 정당과 정치인들은 정체를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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