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총리를 구하지 못하는 나라

동아일보 입력 2010-09-16 03:00수정 2010-09-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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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인구 4887만5000명에 국내총생산(GDP) 15위, 수출 9위, 자동차 생산대수 5위를 자랑한다. 취학률, 문자해독률, 인터넷보급률은 명실 공히 세계 1위다.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확인해주는 수치들이다. 이런 나라에서 정운찬 국무총리 퇴임(8월 11일) 이후 1개월, 김태호 총리 후보자 낙마(8월 29일) 이후 2주일이 지나도록 후임자를 고르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무총리는 헌법(86조)상 행정에 관해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하는 자리지만 역대 정부에서 총리가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한 경우는 별로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한 분야에 집중하는 특임총리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한승수 총리는 ‘자원외교 총리’, 정운찬 총리는 ‘세종시 총리’였다. 김태호 총리 후보자는 대권 후보 세대교체 용도였는가. 자타가 총리감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은 1, 2년짜리 특임 총리를 하기 위해 발가벗기기 청문회에 나서기가 내키지 않는 모양이다.

총리 임명이 늦어지면서 외교통상부를 비롯해 문화체육관광부 지식경제부의 장관직 임명제청도 늦어지고 있다. 졸지에 임시직이 된 장관들이 인사와 주요 정책 결정을 차기로 미뤄 이들 부처에서는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정 전 총리를 후임이 임명될 때까지 붙잡아 놓지 않은 것도 잘못이다.

엄격한 도덕성도 총리감이 갖춰야 할 주요한 덕목임에는 틀림없지만 고결한 성직자를 고르는 일도 아닌데 도덕성만 따지고 정책수행 능력을 뒷전으로 미뤄놓을 수도 없다. 총리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한 인사는 최근 30여 년의 공직생활을 영수증 하나까지 꺼내놓고 점검해보다 2, 3개 대목에서 시비가 걸릴 것 같아 스스로 관두기로 했다고 털어놓았다. 논란거리가 전혀 없는 ‘무균(無菌)’ 후보자를 찾자면 20, 30대에서 구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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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국민의 기대수준을 잔뜩 높여 놓고 총리나 장관 후보자들에게 적용하는 윤리 도덕의 기준을 갑자기 하향조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람이 없다는 말은 국민을 화나게 한다. 청와대가 평소 인재 발굴에 공을 들이지 않았다는 얘기다.

의원들이 시청자의 인기만 의식해 총리와 장관 후보자에게 답변 기회도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청문회 방식에도 문제가 많다. 총리와 장관 후보자에게 요구했던 추상같은 도덕적 수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의원이 과연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정치적 사회적 위선(僞善)도 총리 후보자의 인선을 어렵게 만든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선진 지표를 자랑하는 나라에서 부끄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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