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동영]특채 부작용만 보다 다양한 인재 놓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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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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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와 지체장애가 있는 지정훈 씨(31)는 14일 ‘5급 공무원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그가 합격한 분야는 행정고시가 아니라 ‘중증장애인 특별채용시험’이다. 바로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특채’다.

지 씨는 팔다리가 자유롭지 않아 학교에서는 필기를 하지 못했고, 책을 읽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컴퓨터공학 분야는 자신의 불편함 속에서도 머리로 이해하고 간단한 컴퓨터 동작으로 배울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 분야에 매진했다. 지난달에는 박사학위를 따낼 정도로 이 분야에서 성과를 냈다. 지 씨와 함께 이번에 7급 공무원으로 특채된 김모 씨(40)는 지 씨보다 심한 1급 지체장애인이다. 그는 중소기업에서 기업혁신 분야를 담당해오다 이번 특채에 응시해 서류전형과 면접 과정을 거쳐 중소기업청에서 일하게 됐다. 이런 특채제도가 없었다면 지 씨나 김 씨 같은 중증장애인들은 공무원이 되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최근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맞춤형 특채’ 때문에 정치권은 물론이고 온 나라가 들썩였다. ‘개천에서 용이 나게’ 하는 ‘사다리’ 역할을 하던 고시를 없애고 고위층 자녀들에게 특혜를 주는 특채를 활성화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지적이 쏟아졌다. 특채를 활성화하려던 행정안전부는 한 걸음 물러섰다. 행정고시 합격자 수를 그대로 유지하고, 특채 선발 비율도 늘리지 않겠다고 밝힌 것.

당초 행안부는 부처별로 흩어졌던 특채를 단일화하고 농어민 후계자나 중소기업 종사자, 장애인, 기능인 등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을 서류전형과 면접을 통해 선발할 계획이었다. 단순히 지필고사를 잘 보는 ‘모범생’보다는 해당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전문가’가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하지만 맞춤형 특채 논란이 불거진 후 이런 방안을 활성화하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자는 논의는 아예 사라졌다. 대신 ‘고시제도가 절대적으로 옳다’ ‘특채가 음서제도로 전락한 만큼 사라져야 한다’는 격한 비판만 난무하고 있다.

모든 제도에는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제도 시행이 가져올 긍정적 효과는 모두 무시한 채 부작용만 거론하며 제도 자체를 매도한다면 그 어떤 제도도 제대로 시행될 수 없다. 행시 합격자에 특정 학교 출신이 많다는 비판이 있지만 공직사회에 우수한 인재도 필요하고, 지 씨처럼 다양한 경험을 쌓은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어느 한 면의 부작용 때문에 더 큰 긍정적 효과까지 외면하는 우(愚)를 범해선 안 된다.

이동영 사회부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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