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장강명]어음 쓰는 대기업들 해명도 가지가지

동아일보 입력 2010-09-09 03:00수정 2010-09-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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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이 몇십조 원씩 현금성 자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왜 납품대금을 현금이 아닌 어음으로, 그것도 일주일짜리도 아닌 한 달짜리를 주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야 한다.”

올해 7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 말이다. 이 발언이 나오고 며칠 뒤 만난 한 대기업 임원은 기자에게 “솔직히 윤 장관 말씀에 실망했다”며 “우리 회사는 다 현금으로 결제하고 다른 주요 기업들도 그렇다. (윤 장관이) 실태 조사도 안 하고 ‘옛날 노래’ 부르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같은 양측의 주장에 의문을 품고 동아일보 산업부가 지난해 매출액 기준 1∼30위 대기업이 협력업체에 대금을 주는 방식을 직접 조사해봤더니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은 윤 장관이 아니라 그 대기업 임원이었다. 협력업체에 현금으로만 대금을 준다고 답한 기업은 12곳밖에 되지 않았으며, 9곳은 현금과 어음의 중간 형태인 현금성결제를 사용하고, 나머지 9곳은 아직도 어음을 쓴다고 답변했다.

어음이나 현금성결제를 사용하는 기업에 나름대로 사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올해 6월 말 기준 현금성 자산이 1조2000여억 원인 삼성중공업은 “우리가 현금을 쌓아놓고도 어음을 쓰는 것 같지만 사실 차입금은 3조4000억 원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KT는 “어음을 쓰지만 대기업에, 그것도 대금이 2억 원 이상일 때에만 사용한다”고 밝혀왔다. 현대제철은 “우리가 쓰는 어음대체결제수단인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은 사고가 나도 은행이 우리한테만 상환을 요구할 수 있게 해야 현금성결제로 인정받는데 은행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본보의 분류 기준이 너무 엄격하다며 “하도급업체에는 전부 현금으로 결제해주고 일부 설비납품업체나 컨설팅회사에만 예외적으로 어음을 주는데 ‘어음 쓰는 회사’로 분류해야 하느냐”고 하소연한 기업도 여러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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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가 취재를 하며 현행법이 요구하는 수준 이상으로 엄격하게 기준을 적용한 것은 사실이고, 조사 대상 기업이 30위권 밖의 다른 대기업에 비해 거래관행이 더 나은 것도 맞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윤 장관이 7월에 했던 지적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취재를 하는 동안 “어음 결제가 뭐가 나쁘냐”는 항변은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그 대신 “우리가 알기로는 경쟁사인 ○○사도 분명히 어음을 사용하니 그 회사 얘기도 기사에 꼭 넣어 달라”는 ‘제보 아닌 제보’는 많이 받았다. 은행 때문에, 부채가 많아서, 예외적으로 쓴다고 하면서도 자신들의 어음 사용이 떳떳하지 않다는 걸 이들 기업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증거다.

장강명 산업부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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