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불공정한 심판은 누가 심판할 것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9월 8일 03시 00분


외교통상부가 유명환 외교부 장관의 딸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치밀하게 연출된 각본이 있었던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외교부 공무원인 내부 심사위원 2명이 유 장관의 딸에게 20점 만점에 19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몰아줘 유 장관의 딸이 최종 합격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 장관 사퇴로 끝낼 일이 아니라 딸의 채용 과정에 직권남용 같은 위법행위가 있었는지 분명히 가려낼 필요가 있다.

서울 이화여고에서 이 학교 교사 딸의 성적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돼 서울시교육청이 조사에 나섰다. 이 학교 3학년인 해당 학생은 9등까지 수상하는 교내 수학경시대회에서 공동 9등에 입상했으나 다른 교사와 학부모들의 이의 제기로 다시 채점을 한 결과 12등으로 밀려났다. 2011학년도 대학입시 수시전형에서 교내 경시대회 수상은 당락에 영향을 주는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사항이어서 공정성 시비가 일고 있다.

우리 사회의 각종 선발 시스템이 주관적 평가로 크게 바뀌고 있다. 수능시험 성적보다는 학생의 창의력과 잠재력을 보고 뽑는다는 입학사정관제 입시가 신호탄이었다. 입학사정관제는 외국어고 입시까지 확대됐다. 입학사정관제 입시가 도입될 때 “고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 스님이 입학사정관이 아닌 한 학부모가 결과에 승복하겠느냐”는 회의론이 제기됐다. 어제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대학 수시모집에서 교직원 자제들이 불공정하게 입학한다는 얘기가 많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대학입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대되다 보면 결국 시험 점수만으로 줄 세워 놓고 뒤부터 자르는 입시를 부활하자는 여론이 높아질 것이다.

공무원 채용 방식에도 변화가 시도되고 있다. 행정고시를 ‘5급 공채’로 이름을 바꾸고 채용 정원의 50%를 민간 전문가 가운데서 선발할 예정이다. 외교아카데미를 통해 외교관을 육성하는 방안도 발표됐다. 이런 방식이 선진국형 시스템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시스템은 심판관이 공정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주관적 판단을 통해 채용을 결정하는 심판관들의 공정성은 누가 심판할 것인가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사회적 자본, 즉 신뢰가 부족한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무리 선진적인 제도라도 이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자질과 수준이 낮으면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그렇다고 시험 점수만으로 선발하는 과거의 방식으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할 일만은 아니다. 불공정한 속임수가 끼어들지 못하도록 제도를 정교하게 설계하고 심판관들의 일탈이 없도록 감시하는 시스템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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