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형준]“한방에 해결할 친서민대책 내놓으라니…” 속앓는 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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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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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책을 너무 기대하지는 마세요.”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좀 알려주세요.”

요즘 경제 부처 공무원들이 기자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친(親)서민’을 강조하면서 정부가 각종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정책에 담을 실질적인 내용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7월 29일 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8월 말까지 대·중소기업 하도급거래 개선책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실제 공정위는 기한에 맞춰 하도급법 적용 대상을 2, 3차 협력업체까지 확대한다는 내용을 담은 대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청와대와의 조율 과정에서 “내용이 너무 없다. 좀 더 보완하라”는 지시가 떨어지면서 대책 발표는 무기한 연기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획기적인 개선책일수록 시장경제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 많아 어떤 대책을 더 포함할지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2일 발표된 물가안정대책도 알맹이가 없다는 느낌이다. 기획재정부는 발표 전 “단기처방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구조적 대책으로 내놓은 것은 시장경쟁 촉진, 유통구조 효율화, 소비자 감시강화 등으로 두루뭉술했다. 세부 대책도 대부분 기존에 알려졌던 것들이다.

정부는 이달 중에 청년실업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해당 부처의 실무자들은 핵심 내용으로 뭘 채워 넣어야 할지 아직도 고민하는 모습이다. 이런 현상이 생긴 것은 청와대가 친서민 기조를 내세워 물가, 청년실업, 하도급 등 수십 년간 누적돼 온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관료들은 한두 달 만에 정책을 급조해내느라 정신이 없다. 대책을 내놓는 관료들 스스로 정책의 ‘품질’에 자신감이 없다. 특히 이 대통령이 “금융위기 극복 수혜가 수출 대기업에만 돌아가고 중산층 서민의 체감경기는 호전되지 않았다” “대기업은 몇천억 원씩 이익이 났다고 하는데 없는 사람은 죽겠다고 한다”며 연일 친서민을 강조하면서 이런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단숨에, 그리고 한 방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이미 여러 가지 후유증을 낳고 있다. 한 경제 부처의 고위 당국자는 “실업이나 상생 문제는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위에서 만들라고 하니 관련 부처는 과거 발표했던 대책을 가져와서라도 만들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공정위의 국장급 간부는 “상생이 사회적 화두가 되면서 지금 당장은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렇게 밀어붙이는 식으로 해서 얼마나 지속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형준 경제부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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