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사승]왜 타블로를 물고 늘어질까

동아일보 입력 2010-09-01 03:00수정 2010-09-0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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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일에 왜 이리 관심이 많은지. 그냥 아무개가 아니라 타블로라는 꽤 이름 있는 가수라 하더라도 그렇다. 타블로와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양자가 검찰에 도움을 청하는 지경으로 일이 커졌다. 일이 어찌해 여기까지 이르렀는지 따져보면 재미있다.

타블로와 타진요의 관계는 연예인과 그에게 관심을 갖는 자의 구도다. 팬이나 안티팬 모두 이 관심무리에 속한다. 연예계는 이 두 요소 사이의 단순하고 폐쇄적인 관계 속에서 작동한다. 타블로와 타진요의 치고받기는 이런 관계를 깨는 현상으로 몇 가지 중요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연예인과 팬 또는 안티팬은 연예산업을 구성하는 요소다. 통상 구성요소끼리는 공생관계를 형성한다. 스타는 팬을 먹고 산다는 식으로, 다른 기능을 하면서 주고받는 거래를 한다. 그런데 이 경우는 갈등과 경쟁만 보여준다. 갈등과 경쟁은 같은 눈높이의 경쟁자 사이에서나 벌어진다. 싸울 때는 같은 성질의 무기를 들고 달려든다.

그러나 둘은 서로 다른 무기를 내지르고 있다. 겉으로 보면 타블로는 개인사적 진정성을, 타진요는 그 진정성에 대한 의심을 주장한다. 하지만 타진요는 타블로가 교포, 스탠퍼드대, 수재, 가수 등의 외국물, 잘남을 내세운 것이 성공의 한 요인이므로 이에 대한 의혹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로 미루어볼 때 타진요의 무기는 외국물, 잘남으로 포장된 타블로의 정체성에 대한 위화감을 뒤에 감추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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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이 논란은 사람이 특정한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그 영역의 논리가 아닌 다른 논리를 들이미는 현상의 전형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 영역의 논리만으로 현상을 설명하려는 것에 반기를 든 것이다. 가수가 노래만으로 평가받지 않고 다른 요소로 성공하고 다른 요소로 감시받는다. 세상이 열려버린 것이다. 누구나 어디든 들락거리고, 말을 걸고, 시시비비를 논한다. 옳든 그르든 손쉬운 넘나듦으로 빠져든다. 타진요 가입자가 무려 12만 명이라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넘나듦이 첫 번째 발견이라면 두 번째 발견은 이런 넘나듦이 지칠 줄 모른다는 사실이다. 참던 타블로가 증거자료를 내놓았지만 타진요는 지치지 않는다. 서울서부지검에 타블로의 학력과 국적에 대한 의혹을 밝혀달라는 민원을 냈다. 상식으로 이런 일에 검찰이 나선다는 게 말이 되나 싶다. 나선다면 그 논리가 무엇인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그렇든 말든 타진요는 지치지 않고 제 길을 간다. 힘이 어디서 나올까. 인터넷이다. 졸업증명서 대학사진 대학동문 등 공식성이 먹히지 않는 또 다른 공간이 인터넷이다. 소문과 여과되지 않는 주장, 진실에 대한 의구심에 대해서도 인터넷은 곧잘 정당성을 부여한다.

온라인의 동원력을 강화하는 것은 오프라인의 공조다. 제도권 권력인 검찰의 개입은 비제도권의 넘나듦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결국 정상적인 현상의 하나로 도장 찍어주는 역할을 한다. 서울중앙지검의 수사와 서부지검의 태도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세 번째 발견은 검찰의 개입으로 넘나듦의 생태계 구성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남의 일에 대한 비판과 관심이 온·오프라인의 공방으로 확대되면서 우리 삶에 일상적으로 자리 잡아버리는 현실을 목도한다.

공직자도 아닌 연예인의, 사기사건도 아닌 학력 진위 논란에, 검찰이라는 공권력이 뛰어들었지만 사실이 확인된다고 해도 받아들일지 확신할 수 없는 혼돈. 갈피 잡기 어려운 세상의 또 하나의 이야기에서 묘한 생태계를 본다.

김사승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교수



▲동영상=타블로-강혜정, 동료 300명 축하속 ‘화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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