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원주]성추행 장교 감싸기… 이게 해병대 정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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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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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심쩍은 부분이 적지 않다.”

25일 소속 부대 장교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민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병사에게 해병대사령부가 부대 복귀를 강요했다는 주장에 대해 사실을 확인하려는 동아일보 기자에게 해병대 법무관이 내놓은 해명이다. 피해자인 이모 상병(22)의 주장과 달리 자체조사 결과 △성추행은 네 차례가 아닌 세 차례였고 △성추행의 수위가 이 상병 측 주장보다 낮았으며 △사건 이후 이 상병이 자살을 기도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병대의 이 같은 해명은 모두 ‘성추행 사건’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없는 내용이다. 이 상병이 자살을 시도한 적이 없거나 성추행 수위가 낮다고 해서 이 상병이 현재 심한 수치심과 외상 후 장애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이 상병을 치료하는 주치의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성추행 횟수가 다르다”는 해명은 오히려 가해자인 오모 대령이 성추행을 실제로 했음을 인정하는 것일 뿐이다.

스스로 잘못을 시인해 놓고도 해병대사령부 측은 “이 상병이 다음 달 1일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탈영병으로 간주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엄중한 조치를 취하는 등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는커녕 피해자의 규정 위반을 문제 삼아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이 상병의 보호자인 이모부 안모 씨(56)는 “사실이 알려진 뒤 군 당국에서 계속 연락해 협박에 가까운 말을 하고 사건 은폐를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이 아니라면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하면 될 텐데 군 당국은 한 달이 지나도록 엉뚱한 얘기만 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에 따르면 오 대령의 성추행 정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강제로 끌어안고 입을 맞추거나 옷을 벗긴 뒤 중요 부위에 손을 대는 등 피해사실을 읽어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역겹고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도 이 상병은 가해자인 군 당국으로부터 ‘탈영병’으로 몰리는 2차 피해를 보고 있다.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해병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소리 높일 만큼 해병대의 자존심과 자긍심은 남다르다. 그러나 이번 일로 61년 해병대 역사와 70만 해병대 전우들의 명예에 큰 상처가 생겼다. 대한민국 청년들과 부모들이 이번 소식을 접하고도 계속 해병대를 믿고 당당히 지원할지부터 걱정이다. 지금 해병대가 취해야 할 태도는 마치 트집 잡듯이 피해자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진상을 철저히 조사해 가해자를 엄벌하고 국민 앞에 사과하는 것이다.

이원주 사회부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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