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어뢰 구조圖바뀐 줄도 몰랐던 軍, 국민 또 속였다

  • 동아일보

천안함 폭침사건 민군합동조사단(합조단)이 5월 20일 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 가장 눈길을 끈 것은 폭침 현장에서 극적으로 수거한 북한 어뢰 추진체의 잔해와 실물 크기로 확대한 약 7m짜리 어뢰의 내부 구조도(構造圖)였다. 당시 합조단은 이 구조도가 북한의 중어뢰 모델의 구조도라고 밝혔다. 합조단은 “어뢰 잔해와 mm 단위까지 일치하는 설계도를 갖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어뢰 추진체 잔해와 구조도는 합조단 발표에서 핵심 증거였다.

합조단은 그제 한국기자협회 등 3개 언론단체와의 토론회에서 당시 발표 때 사용한 어뢰 구조도가 CHT-02D 모델이 아니라 다른 북한 중어뢰인 PT-97W 모델의 구조도였다고 시인했다. 엉뚱한 어뢰 모델의 구조도가 등장한 과정에 대해서도 합조단과 국방부의 설명이 달라 혼란스럽다. 어뢰 잔해와 함께 공개한 부분 설계도는 정상적인 CHT-02D 모델의 것이었다니 이런 뒤죽박죽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어뢰 구조도의 모델이 바뀌었다고 해서 천안함이 북의 어뢰 공격으로 폭침했다는 사건의 성격이 달라질 것은 없다. 그러나 어뢰 구조도가 엉뚱한 모델로 바뀐 것도 모른 채 국민 앞에서 조사결과를 발표한 것은 중대한 실수가 아닐 수 없다. 함께 일하는 사람은 물론 지휘계통의 어느 누구도 실무자의 실수를 발견하지 못할 정도라면 군(軍)의 전문성 부족과 기강해이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군은 어뢰 구조도의 인쇄 오류를 조사결과 발표 1주일쯤 지난 뒤에야 알게 됐다. 어뢰 잔해와 어뢰 구조도가 다르다는 사실은 5월 24일 김태영 국방장관이 국방부 자문위원들에게 설명하는 자리에서 “왜 다르지? 알아봐”라고 지시하면서 비로소 관계자들이 구조도를 잘못 사용했다는 것을 실토하게 됐다. 5월 말 이후 진행된 설명회에서는 정확한 모델의 구조도를 놓고 설명했다고 한다. 지난 한 달 동안 어뢰 구조도를 잘못 제시한 사실을 공개적으로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는데도 질책이 두려웠던지 국민을 속인 것이다.

허위보고를 비롯해 거듭되는 군의 실수가 합조단 발표에 대한 불신을 키운 측면이 있다. 가뜩이나 천안함 사건 관련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있는 형편에 군의 조사와 발표는 어느 때보다도 정확하고 투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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