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한국을 관광한 중국인 Y 씨는 여전히 기분이 상해 있다. 비자를 발급받으면서 겪은 ‘수모’ 때문이다.
비자 신청 시 여행사에 제출하는 10만 위안(약 1772만 원)의 여행보증금이나 5만 위안의 예금 증명서, 주택 및 차량 소유 증명서 등 까다로운 조건은 사업가인 그에게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복병’이 있었다. 한국 유학 시절 대학 등록을 늦게 하는 바람에 불법체류자로 분류된 전력이 발목을 잡은 것. 그는 비자 담당 영사에게 당시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지만 결과는 ‘발급 거부’였다.
이 때문에 절호의 해외관광 시즌인 ‘노동절 황금연휴’(5월 1∼3일)를 놓쳤다. 뒤늦게 비자는 발급 받았지만 그는 화가 치민다. 중상층인 그가 한국에 불법체류나 하러 가는 사람으로 취급받았다는 생각에서다.
중국인에게 이런 일은 다반사다. 대부분의 중국인이 5만 위안의 예금 잔액과 10만 위안의 여행보증금을 요구받으면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 ‘잠재적 불법체류자’로 의심받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처럼 비자 발급이 까다로운 것은 무엇보다 입국한 외국인이 불법체류를 하면 비자를 발급한 영사에게 책임을 묻는 관행 때문이다. 비자 발급의 정당성만 따지는 게 아니라 사후에 발생한 불법체류의 책임까지 추궁받는다. 하지만 불법체류자가 1200만 명에 이르는 미국도 불법체류자가 나왔다고 비자를 내준 영사를 처벌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관광객 모집 업체로 등록한 중국의 여행사 역시 불법체류자 발생에 따라 영업정지를 받을 수 있어 가능한 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이 덕분에 불법체류자는 많이 줄었다. 10년 전 49만1000여 명의 체류자 중 41.8%에 이르던 불법체류 외국인은 최근 14.8%로 떨어졌다. 2002년 30만 명까지 늘었던 불법체류자도 최근엔 17만5000명 수준으로 줄었다.
하지만 문제는 해외관광객 유치가 공염불이 돼 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중국인은 134만2317명. 이는 지난해 중국인 해외관광객 4766만 명의 2.8%에 불과하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000달러에 근접하면서 중국인 해외관광객은 최근 급증 추세다. 2000년 1047만 명이던 해외관광객은 지난해 4766만 명으로 5배 정도로 늘었다.
지금 세계 각국은 급증하는 중국인 관광객을 잡기 위해 혈안이다. 일본은 다음 달 1일부터 비자 발급 기준을 연소득 25만 위안에서 월 5000위안으로 문턱을 크게 낮춘다. ‘도덕국가’로 불리는 싱가포르는 올해 3월 카지노까지 개설했다.
우리가 적용하는 비자 발급 조건은 대부분 중국이 1인당 GDP 1000달러도 안 되던 10여 년 전 기준이다. 중국은 이미 지난해 1인당 GDP 3700달러를 넘어섰고 베이징(北京), 상하이(上海)는 1만 달러를 넘었다.
불법체류자 가운데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이 가장 많은 점은 이해할 만하다. 탈북자가 영사관으로 무단 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개인은 사실상 비자를 신청할 수 없도록 한 점도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하지만 불법체류 방지 못지않게 ‘공해 없는 산업’인 관광객 유치도 중요하다. 요즘 백화점이나 남대문, 명동의 상인은 중국인 관광객이 없다면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말한다. 상충하는 정책을 잘 조절하는 것은 위정자가 마땅히 갖춰야 할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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