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활]하토야마 ‘8개월 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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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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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30일 일본의 중의원 선거에서 당시 제1야당이었던 민주당은 54년 만의 실질적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자민당 장기집권의 폐해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의 폭발적 지지에 힘입어 민주당은 전체 의석 480석 중 64%인 308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뒀다.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는 ‘깨끗한 정치인’이란 이미지를 바탕으로 총선 승리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9월 16일 출범한 하토야마 정권의 지지율은 70∼80%까지 치솟았다.

▷‘제2의 메이지 유신’이라는 국민의 기대를 받으며 집권한 하토야마 총리가 어제 총리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정권 출범 후 약 8개월 반 만에 물러나는 단명(短命)이다. 민주당 정권의 최대 실력자인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도 퇴진 의사를 표명했다. 자민당 정권의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아소 다로 총리에 이어 하토야마 총리까지 4명의 총리가 잇달아 임기 1년도 못 넘기고 물러났다. 일본 정치의 불안정성이 부각되면서 정국(政局)은 격랑에 휩싸였다.

▷하토야마 정권의 몰락을 불러온 것은 경험 및 리더십 부족, 정책 혼선과 신뢰감 추락이었다. 민주당은 ‘깨끗한 정치’를 내걸고 정권을 잡았지만 하토야마 총리와 오자와 간사장의 정치자금 의혹이 불거지면서 ‘자민당 정권과 다를 게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작년 총선 과정에서 공약한 주일미군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는 최대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 악화만 부르고 원상 복귀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잦은 말 바꾸기와 ‘가벼운 입’으로 리더십에 상처를 입었다. 설상가상으로 경제 회복 조짐도 미미하다. 최근 내각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하면서 하토야마 정권은 ‘식물 정권’으로 전락했다.

▷하토야마 총리가 물러나더라도 중의원 의석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민주당 정권이 무너진 것은 아니다. 민주당은 새 내각 출범으로 분위기를 바꿔 다음 달 참의원 선거에 대비할 계획이다. 민주당은 야당 시절 자민당 정권의 잦은 총리 교체를 ‘민의(民意) 무시’라며 공격했다. 그 논리대로라면 민주당은 출범 8개월여 만에 민의를 무시하게 된 셈이다. 민주당이 민심을 다시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8개월 천하’로 끝난 하토야마 정권을 보며 정치 무상이 실감난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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