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가야겠다고 결심하고 보니 스물다섯 살이 돼 있었다. 입시제도도 바뀌어서 물리나 생물 같은 과목을 새로 공부해야 했다. 노량진 입시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힘든 날이었지만 그럴 때마다 대학에 입학해 같이 문학을 말하고 배울 수 있는 친구나 선생님을 상상하면서 버티곤 했다. 고3 때와는 달리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역시 물리나 생물 같은 이과 과목은 내게 너무 어려운 영역이었다.
입시학원의 물리를 가르치던 선생님은 지방에서 막 상경해 사회생활을 시작한 젊은 강사였다. 학생 중에서 가장 나이도 많고 물리 점수도 가장 형편없던 내가 안쓰러웠는지 선생님은 나를 비롯한 서너 명의 학생을 모아 방과후수업을 해주었다. 입시가 코앞으로 다가왔던 달에는 선생님과 나, 이렇게 둘만 빈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했던 기억이 오롯이 남아 있다.
다행히 나는 그해 입시에 합격했다. 학교도 아닌 입시학원에서 만난 나에게 한 학기 가깝도록 방과후수업을 해주었던 김미숙 선생님을 찾아 봬야 한다는 생각을 한 차례 했을 뿐, 잊어버렸다. 2년 후 대학을 졸업하고 첫 책을 출간하게 되었을 때도 그 선생님 생각을 잠깐 하고 말았을 뿐이다. 그러다 연락처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따금 버스를 타고 노량진 학원 거리를 지날 때나 오늘처럼 스승의 날이 되면 누구보다 선생님 생각이 먼저 난다. 어쩐지 슬그머니 뒤돌아보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그때는 모르고 지나갔던 고마움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방과후수업을 마친 날 선생님은 내 손을 잡고 언니처럼 말했다. “이번엔 꼭 대학에 가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라고. 슬프고 따뜻해 보이는 눈이었다. 그래서 “무조건 싫어요”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던.
운이 좋았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있다. 어떤 특별한 선생님을 만났던 때. 소설을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넌지시 말해준 국어선생님도 있었고 아플 땐 음식을 만들어다주셨던 선생님도, 등록금을 보태주신 선생님도, 학습지를 사다주신 선생님도 있었다. 책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스승도 있었다.
희망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던 스물서너 살 어느 겨울밤에 나는 그 선생님들 중 한 분께 길고 긴 편지를 썼다. “선생님, 제가 지금 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해도 늦지 않을까요, 제가 할 수 있을까요”라고 시작되는 편지를. 그때 받았던 격려와 믿음이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주춤거리다 말았을지 모른다.
잠시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친 적이 있다. 나는 곧 그 일을 그만두었고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훌륭한 스승은 자기 생각을 학생에게 그대로 옮겨 심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이 품어온 생각을 잘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식으로 말한다면 정원사가 아니라 산파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스승. 다른 것도 아니고 문학 수업을 하면서 나는 내가 그런 선생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나는 영원히 누군가에게 훌륭한 선생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이젠 자기 자신을 믿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 스스로 가치 있는 무엇인가가 되는 게 어떤지는 아는 사람이 되었다. 무슨 일에든 자포자기와 체념에 익숙해 있던 나를 이렇게 변화시킨 것은 어떤 힘이었을까. 내가 만난 스승. 그분들이 나에게 주었던 것은 음식이나 등록금이나 책이 아니라 빛, 더 좋은 빛이었다. 그 빛이 나를 끌어올린 손이었다고, 오늘 나는 나의 스승들께 전하고 싶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