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잡범’ 수준이다. 그래도 명색이 군수인 사람이 비리 혐의가 드러나자 관내 건설업자 명의의 위조여권으로 외국행을 시도하다 출국금지된 사실을 알고 한동안 잠적했다. 첩보를 입수한 검찰 수사관들이 덮치자 승용차를 몰고 30분 이상 도주극을 벌이다 붙잡혔다. 여직원이었던 내연녀에게는 수억 원의 빌라를 지어주고 거액의 자금관리를 맡기는가 하면 이혼 위자료까지 대신 물어줬다고 한다.
1일 구속된 민종기 충남 당진군수의 사례는 단체장의 자질은 물론 비리와 갈등을 조장하는 공천관행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경기도는 개발사업 인허가, 인사전횡 등의 문제로 안성, 군포, 용인, 오산시장이 사법처리돼 남부 지역은 성한 단체장이 없을 정도다.
경북 영양군은 인구가 2만 명도 안 되는 전국 최소 기초지자체다. 지방세 수입으로는 공무원 월급 주기도 벅찬 곳이다. 그런데도 권영택 군수는 2007년 1월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는 와중에도 3년 된 군수 관용차를 대형차로 바꿔 물의를 빚었다. 이번에는 자신이 대주주인 건설사에 수십억 원의 수의계약을 발주하고 수억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가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돼 군수 공천이 취소됐다.
전남 화순군은 역대 군수 세 명이, 그것도 형제가 사법처리 되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겼다. 2008년 8월 전형준 군수가 선거법 위반으로 한 달 만에 구속되자 동생인 전완준 군수가 보궐선거에서 나서 당선됐다. 하지만 그도 지난달 민주당 청년위원회 간부 20여 명을 군수 관사로 초청해 향응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됐다.
군수 시장은 행정규모는 작지만 각종 인허가권에다 공무원 인사권을 쥐고 있어 지역에선 ‘황제’나 다름없다. 장관 국회의원 좋다지만 보이지 않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어 중앙무대에서 한자리 했다는 사람들도 눈독을 들인다. 유용태 전 노동부 장관, 김흥래 전 행정자치부 차관, 서울 강남구청장 3선을 지낸 권문용 씨는 일흔 안팎의 나이에 고향 군수에 ‘하향’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지자체장들의 비리 배경에는 공천권을 둘러싼 먹이사슬 관계도 한몫한다.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돈을 써서라도 공천을 받으려고 서로 경쟁하는 정치구조 때문이다. 돈 공천으로 당선되면 ‘투자’한 본전을 챙기고 다음 선거 때 쓸 돈을 마련할 궁리를 해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경기 파주에선 한나라당 황진하 의원이 류화선 현 시장에게 직간접적으로 불출마를 종용하다가 경기도당이 류 시장을 후보로 내정하자 “류 시장 부인이 소유한 땅에 대해 특혜성 개발이 추진됐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재심을 할 처지다. 지역에선 “류 시장이 국회의원으로 클까 봐 견제한다. 시장 잘해도 소용없다”는 시선이 많다고 한다. 여주군수는 현금 2억 원을 지역 국회의원에게 전달하려다 체포돼 구속됐다.
이처럼 6·2지방선거 후보 선출 작업이 막바지 단계이지만 곳곳에서 잡음이 나오고 있다. 여야 모두 상향식 공천 운운하면서도 자기사람 심기에 혈안이다. 민주당 한명숙 서울시장 예비후보는 TV토론회를 거부해 이계안 후보가 반발하고 있다. 후보 결정 과정에 유권자인 지역주민이나 민심은 없는 그들만의 지방선거인가. 일방적으로 정한 답지(答枝)를 내놓고 고르라니 유권자는 난감할 뿐이다. 그래도 옥석을 가려 제대로 뽑는 것만이 유권자의 유일한 심판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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