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른바 3대 명품이라 불리는 ‘에루샤(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는 지난해 나란히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에르메스코리아는 지난해 매출 1조1251억 원으로 전년 대비 16.7% 성장하며 사상 처음으로 매출 1조 원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영업이익도 14.5% 증가한 3055억 원이다.
샤넬코리아는 처음으로 2조 원의 벽을 깼다. 매출 2조126억 원, 영업이익 3358억 원으로 각각 전년 대비 9.1%, 24.6% 증가한 성적표를 받았다. 루이비통코리아도 전년 대비 6.1% 증가한 1조8543억 원의 역대 최고 매출을 올렸다. 영업이익은 35.1% 증가한 5256억 원으로 집계됐다. 에루샤만이 아니다. 보석류 선호 현상에 불가리코리아는 37%, 티파니코리아는 19%의 매출 인상률을 기록했고, 고가 시계의 대명사인 롤렉스코리아도 매출이 25% 늘었다.
가장 큰 요인은 ‘N차 인상’이라 불리는 수시 가격 인상이다. 샤넬의 경우 지난해 한 해 동안 다섯 차례나 주얼리, 잡화 등의 가격을 올렸다. “오늘이 제일 싸다”는 명품 브랜드 직원들의 설명에 소비자는 기꺼이 지갑을 연다.
불황 속 성장하는 해외 명품 브랜드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명품 시장에서만큼은 K브랜드의 존재감이 없어서다. 에루샤 등이 한국에서 번 돈의 상당수를 해외 배당으로 내보내고, 쥐꼬리만 한 사회공헌 액수로 비판받을 때마다 이 같은 아쉬움은 배가된다.
한국은 K에루샤를 보유할 수 있을까. 명품업계 관계자는 “미국 브랜드가 유명하긴 하지만, 명품이라고는 안 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단순히 비싸기만 한 제품이 명품은 아니라는 의미다. 세계적 수준의 디자이너, 프리미엄급 옷이나 장신구 등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제조업 기반이 필요하다. 루이비통이 강조하는 ‘사부아르페르(Savoir Faire·장인정신)’나, 샤넬이 스스로를 일종의 ‘문화유산’으로 정의하는 것처럼 이윤 추구를 넘는 경영 철학도 있어야 한다. 전 세계 누구나 한 번 이상 찾아오고 싶은 만큼의 국가나 도시의 브랜드 가치도 있어야 한다.
중국을 보면 한국도 포기할 일은 아니다. 베인앤드컴퍼니의 ‘2025년 중국의 럭셔리 시장’ 보고서는 해외 브랜드 매출이 줄어드는 사이 ‘송몬트’ 같은 중국 현지 브랜드가 이 자리를 채워나가고 있다고 짚었다. 보고서는 “지금 중국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명품을 재정의해 나가고 있다”고 썼는데, 패션업계에서는 중국 고유의 명품 산업이 태동기에 진입했다고 보고 있다. 이웃한 일본은 십수 년에 걸쳐 키워낸 ‘이세이 미야케’ ‘겐조’와 같은 일본 대표 글로벌 브랜드를 더욱 키워나가고 있다.
한국도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 키워낼 역량이 있다. 마침 방탄소년단(BTS),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같은 콘텐츠 덕분에, 한국이 지닌 브랜드 파워도 어느 때보다 높다. 디자이너와 장인을 육성할 산업 기반을 만들고, 지적재산권 보호 장치를 보다 강화할 전략도 필요하다. 명품 브랜드의 존재만으로 한 나라의 우수성을 증명할 수 있는 시대다. 한국을 대표할 명품 브랜드를 키울 전략도 진지하게 고민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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