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육정수]만델라의 럭비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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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6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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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관람한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는 감동을 주는 영화였다. 백인정권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하에서 반역죄로 종신형이 확정돼 복역하다 27년 만에 석방된 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첫 흑인 대통령이 된 넬슨 만델라, 그리고 백인 럭비선수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런데 이들이 남아공의 흑백 사회통합을 이뤄낸 주인공이다. 이 영화는 만델라가 럭비를 통해 남아공 역사를 바꾼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남아공 럭비 대표팀 ‘스프링복스’ 이야기를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스크린에 담았다.

관용으로 이룩한 흑백 사회통합

1990년 석방된 만델라를 태운 차량 행렬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도로 옆 공터에서 축구에 열중하고 있던 흑인 어린이들이 뛰쳐나와 ‘마디바’(만델라에 대한 존칭)를 외치며 환호한다. 이 소리에 맞은편 럭비 구장(球場)에서는 스프링복스 선수들이 연습을 멈추고 행렬을 지켜본다. 팀원 누군가가 “남아공은 이제 망했다”고 탄식한다.

1994년 대통령에 취임한 날부터 만델라는 극심한 흑백 갈등에 부딪힌다. 전원 흑인으로 바뀐 경호원들이 백인의 합류를 거부하고, 백인의 참여를 많이 허용하면 권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측근들의 협박도 계속된다. 마치 1998년 김대중 정권이 탄생한 뒤와 비슷한 상황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만델라는 “권력에 집착하면 지도자가 아니다”며 흑인들의 불만을 단호히 물리친다. 경호실 외에 대통령비서실의 백인 직원들도 본인이 원하면 계속 근무토록 했다.

어느 날 만델라는 남아공과 영국의 럭비 경기를 관전하면서 큰 충격을 받는다. 흑인들이 남아공이 아닌 영국을 응원하는 것이 아닌가. 감옥에 있을 때도 흑인 재소자들이 TV를 보면서 남아공을 응원하지 않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흑백 통합이 시급한 과제임을 절감한다. 여기서도 우리의 지역 및 이념갈등 양상을 보는 듯했다. 흑인들로 구성된 체육위원회는 백인 선수들이 대부분인 스프링복스가 얼마나 싫었던지 이름과 엠블럼, 녹색 유니폼을 다 바꾸려다 만델라의 개입으로 포기한다. 만델라는 일체의 정치적 보복을 허용하지 않았다. 우리는 어떠했던가.

스프링복스는 약체였지만 남아공이 1995년 럭비 월드컵대회 개최국이어서 본선에 자동 진출했다. 만델라는 주장 선수인 백인 청년 프랑수아 피나르를 집무실로 부른다. 감옥생활을 할 때 영감(靈感)을 준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시(詩) ‘인빅터스(invictus·굴하지 않는)’를 읽어주며 꼭 우승해 달라고 당부한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시다.

前職들이 놓친 통합 MB는 이룰까

럭비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만델라는 헬기를 타고 럭비 연습장에 나타난다. 백인 선수들의 손을 일일이 잡으며 “행운을 빈다”고 격려한 뒤 피나르를 따로 불러 헨리의 시집을 선물한다. 스프링복스는 마침내 결승까지 올라 공포의 대상인 뉴질랜드를 15 대 12로 꺾고 기적을 달성한다. 기술이 아니라 흑백통합의 승리였다. 경기장은 물론 거리마다 흑인과 백인들이 서로 얼싸안고 춤을 추며 하나가 된다.

스프링복스 팀 모자와 유니폼 차림의 만델라는 우승컵을 수여하며 피나르에게 “나라를 위해 자네가 큰일을 해줬네”라며 감격 어린 격려를 했다. 피나르는 “아닙니다. 큰일을 하신 건 각하이십니다”라고 답한다. 용서와 화해, 관용의 정치로 흑백을 하나 되게 한 이 역사적 사건은 남아공의 소중한 자산이 됐다.

사회통합은 상대방에게 요구해서가 아니라 내가 먼저 변해야 가능하다는 지혜를 우리에게도 가르쳐 준다. 비슷한 역정(歷程)을 걸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도 만델라 못지않은 국민통합을 실현할 기회가 주어졌다. 만델라는 노벨평화상을 빛냈는데, 김 전 대통령은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도 세종시, 4대강 문제 등에서 시험을 받고 있다. 만델라에게서 통합의 지혜를 얻었으면 한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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