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인터뷰 모습이 화제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창한 부담 아래 복받치는 비장한 눈물이 아니라, 자신의 성취에 환호하는 밝은 웃음이 신선하다고들 입을 모은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힘 빼고 표정을 푼 모습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세련되어 가는 우리나라를 확인한 듯하여 으쓱하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며 우리 어른들도 좀 경직을 풀고 부담을 덜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 강사들이 강의하기 버거워하는 대상 1순위가 나이 지긋한 공무원 혹은 기업체 간부들이라고 한다. 굳은 인상에 팔짱 낀 채 어디 한번 해봐라 하는 식으로 버티고 있으면 아무리 즐거운 강의도 맥 빠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 전형적인 장면이 얼마 전 외국 가수 휘트니 휴스턴의 공연에서 연출됐다. 거대한 체육관의 앞자리 대부분을 차지한 이들은 카드회사의 초대 고객들로 잔뜩 경직된 어른들이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가수라도 그런 비장한 환경에서 분위기 띄우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딱한 광경이 안 봐도 보였다.
우리 어른들은 아직도 모두들 국가와 민족을 짊어지고 힘겨워한다. 모였다 하면 국정 전반에 걸쳐 전문가연한 식견과 주장을 쏟아내느라 바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글로벌 경제위기를 입에 달고들 살았었는데. 이제는 세종시, 교육의 부패, 지방선거가 화두다. 환경문제에 관해서도 기후변화, 저탄소 녹색운동이 자연스럽게 입에 오른다. 자신의 집안경제나 자녀교육, 집 주변의 쓰레기 치우기, 지역행정의 예산 지출이 관심을 끌지는 못한다. 그런 것에 눈 돌리기에는 우리의 스케일이 너무 큰가 보다.
거대담론보다 생활 행정으로
선진국을 얘기하자면 예전에는 경제발전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국격(國格)이니 선진문화니 하는 것이 등장했다. 말하자면 국민 각자가 맡은 일 제대로 하고 좀 더 예의를 차려가며 살자는 것이리라. 그런데 아직도 거창하게 생각하는 습관은 여전한 것 같다. 그래선지 각 행정청이나 자치단체에서는 발전된 우리나라를 알리고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근사한 볼거리에 집착하는 것을 본다. 대단한 조형물을 세우거나 흥겨운 축제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외국에 가면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그네들의 일상적인 삶과 사는 방식이다. 인위적인 축제나 시설에 환호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의 대도시들은 많이 아름다워졌지만 이면도로의 쓰레기와 곳곳에서 코를 찌르는 하수 냄새, 지하철이나 택시의 괴괴한 냄새와 위생상태 등 해결해야 될 소소한 과제도 많다. 이러한 것들을 해결해야 걷고 싶고, 다시 오고 싶은 도시가 된다. 이렇게 바로 우리 주변 생활에 관심을 갖는 것이 행정이요 정치 아닐까.
밴쿠버 올림픽을 예로 들더라도, 예상을 넘는 성과나 국위 선양으로 기뻤지만, 앞으로 더 좋은 성적이라는 큰 목표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관심의 범위를 좁혀 되짚어 보면 눈에 들어오는 간접적 국위 선양의 방법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다른 나라의 중계에 비하여 경기의 명장면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던 화면, 전문적이거나 분석적이지 못한 중계, 심판 판정에 대한 항의가 흥분과 거친 몸짓에 불과하고 규정이나 비디오판정 기준에 대한 숙지 그리고 정확하고 냉정한 의사전달이 미흡했던 부분, 개·폐회식 때의 유니폼은 국가의 멋과 미적 감각을 뽐낼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좀 더 신경 쓰지 못했던 아쉬움 등등에서도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선거철이 되면 정치인들의 캠페인에서도 잔뜩 힘주기가 많은 것을 본다. 흔히 민생경제, 서민복지, 공명선거 등의 추상적 구호들이 앞 다투어 등장한다. 하지만 이런 공약으로 우리 생활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진다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또한 선거 전략상의 이유에서인지 주로 관심을 갖는 것이 보호해야 할 빈민, 서민과 부를 재분배해야 할 부유층이고 조용한 중산층은 웬만하면 쉽게 외면당하곤 한다.
조용한 중산층 챙기는 정치
중산층은 소위 지도층도 아니고 정부의 보조를 받을 만큼 가난하지도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면서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건실한 다수임에도, 권위주의 시대에는 참여하지 않은 양심이라고 홀대당하고, 시대가 바뀌고는 부자들에 대한 세금폭탄 논리에 가장 큰 파편상을 입기도 했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도 사회 각 분야를 지탱하며 제몫을 하는 이런 사람들에 대한 고려도 중요하다. 이들이 열심히 일하도록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사회도 돌아가고 복지도 가능할 것이다.
바야흐로 지방선거의 계절이 다가온다. 이번 선거에서는 계파 간 다툼에서 누가 승리하고, 보수와 진보가 어떻게 세를 나누었는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힘을 좀 빼고 스케일을 줄여서 소박한 생활정치, 생활행정에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정치적 승패의 거창함보다 구체적 변화와 개선이라는 실리를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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