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손열]시야 넓혀야 보이는 한중일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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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3국을 엮는 구상은 한국의 오랜 로망이다. 개화기 김옥균은 쫓겨 간 일본 땅에서 삼화(三和)주의를 꿈꿨고 안중근은 옥중에서 삼국연대에 의한 동양평화론을 주창했다. 한 세기 후 노무현 정부는 국가전략으로 동북아시대를 추진한 바 있다. 현 정부도 예외는 아니어서 한중일 정상회담에 적극적이다. 얼마 전 3국 간 협력을 제도화하기 위한 상설사무국을 서울에 유치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반면 도쿄나 베이징에서 보는 한중일 혹은 동북아는 결코 로망이 아니다. 이 공간을 운명공동체라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좀 더 복잡하게 세상을 바라본다.

일본은 지리적으로 아시아의 일원인 동시에 섬나라로서 태평양적 정체성을 갖는다. 미국 일변도로 전개해온 외교노선을 현재의 하토야마 유키오 정권이 동아시아로 전환하는 데 애를 먹는 까닭은 이러한 이중정체성 때문이기도 하다. 동아시아공동체를 내세우지만 동아시아를 어디까지 확장할지 고민 중이다. 또한 미국을 포함하는 아시아-태평양 역시 일본에 사활적 공간이다. 따라서 두 지역은 함께 추진될 것이다. 나아가 일본은 가교(bridge)로서의 정체성을 부쩍 강조한다. 서양과 동양 사이,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 동아시아국가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도쿄의 전략적 지평은 동북아를 넘어 복잡하게 짜여 있다.

중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의 중심을 지향하는 중국에 동북아는 그저 하나의 지역일 뿐이다. 본래 중국의 지역전략은 책임대국으로서 동남아를 엮는 것으로 시작했고 중앙아시아를 엮는 상하이협력기구도 동시에 운용했다. 나아가 G20 등 국제무대에서 브릭스(BRICs) 즉 거대신흥국의 정체성을 추구했고 개도국의 대표 역할도 자임해 왔다. 결국 지구적 강대국으로서 G2의 길을 걸어갈 중국이 한중일 협력에 거는 기대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번 상설사무국 유치가 새로운 만남의 출발이 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복잡한 마음을 읽고 이들을 끌어들일 소프트파워가 요구된다. 출발점은 일본과 중국이 세계 2, 3위의 경제대국이고 군사대국이라는 점, 그리고 강대국이 보는 지역은 한국과 같은 중견국이 보는 그것과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는 일이다. 한국과 달리 중국과 일본의 이익은 동북아를 넘어 동아시아지역과 지구로 확장돼 있기 때문에 ‘동북아를 위한’ 한중일 협력은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또한 동북아에서의 뿌리 깊은 중-일 간 경쟁, 역사문제, 영토문제는 협력의 엄연한 장애요인이다.

실마리는 동북아 밖에서 찾을 수 있다. 한중일 3국은 100년에 한 번 오는 위기를 겪는 가운데 지구화를 지탱하는 국제제도에 여러 결함이 있음을 발견했고 지역기구가 역외로부터의 위기에 대한 안전망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였음을 실감한 바 있다. 또 성장 분배 환경을 함께 고려하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구축할 필요성에도 공감한다.

한국의 역할은 여기에 있다. 위기 이후 새 질서를 짜가는 데 있어서 3국간 협력을 이끄는 일이다. 예컨대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은 3국간 눈앞의 이해득실이란 계산법으로는 성사되기 어려운 사안이다. 그러나 이를 지역과 지구의 공생네트워크를 짜나가는 출발점으로서 인식할 때 협력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중-일의 가교론, 책임대국론의 시점에서 한중일 FTA는 지구공공재 혹은 지역공공재를 제공하는 일이다. 신시대는 신사고를 필요로 한다. 한중일 상설사무국은 기존의 만남을 체계화하는 사무적 수준을 넘어 지역 지구적 시야에서 3국이 갈 공생네트워크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개항 이래 한 번도 해보지 못한 한중일의 새로운 만남은 그렇게 시작될 것이다.

손열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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