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대를 중심으로 2004년 모든 일본 국립대학이 법인화됐다. 5년이 지난 지금 일본 국립대는 무한경쟁 시대에 돌입했다. 도쿄대 법인화 이후 연차적으로 세 차례에 걸쳐 연구차 도쿄대를 방문하게 됐다. 놀랍게 변모하는 분위기를 보면서 실상이 더욱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우리도 서울대가 법인화의 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지방 국립대 역시 서울대 법인화가 초미의 관심사다.
법인화 시작의 문을 연 도쿄대의 28대 총장 고미야마 히로시(小宮山宏)는 교육개혁과 변혁을 향한 야심 찬 액션플랜을 구상하고 실천했다. 고미야마 총장이 창안한 액션플랜은 다양한 학문영역의 세분된 전문 연구내용을 융합 통섭하는 지식의 구조화, 기동력 있는 교육 연구 인프라 구축과 유연하고 활력 있는 자율분산협조 모델 개발, 최우수 교수와 학생의 지식 창조장인 세계 제1의 교육기관으로 지식의 정점 구축을 목표로 한다.
이 계획은 일본의 다른 국립대로 확산돼 많은 학교가 비슷한 개혁의 길을 걷고 있다. 액션플랜은 대학 구성원의 희생과 봉사, 감당하기 어려운 노력을 요구한다. 비슷한 시기에 액션플랜을 실시한 영국의 옥스퍼드대 존 후드 총장도 대학 구성원의 합의를 얻어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고미야마 총장은 교수 1300여 명에게서 합의를 얻어내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교수들이 연구에 너무 바빠 액션플랜 보고서를 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농담 삼아 한 얘기 같지만 충분히 납득이 간다. 산업현장처럼 24시간 가동하는 대학 실험실의 기계음과 밤을 밝히는 실험 연구실을 보면 난부 요이치로(南部陽一郞) 교수 등 노벨상 수상 과학자 여럿 배출한 도쿄대의 활발한 연구활동을 짐작할 수 있다.
도쿄대 혼고 캠퍼스의 총장실이 위치한 본부 현관에 들어서면 법인화 이후 긴박하고 활력 넘치는 모습을 실감한다. 최첨단 연구프로젝트 내용을 담은 포스터와 그 실물 모형이 벽면과 로비를 장식한다. 또 새로 개발한 인공지능 로봇(UT-μ2 magnum) 모형, 장력으로 바다에 뜨는 압축력 섬인 텐세그리티(Tensegrity) 모형의 부츠를 설치했다. 이 같은 대학본부 건물 분위기는 국내 대학과 사뭇 다르다.
하마다 준이치(濱田純一) 현 총장(29대)은 세계를 담당하는 지식의 거점 형성 목표뿐만 아니라 한 단계 더 나아가 연구 성과로 얻은 첨단 지식을 세계인에게 제공하고 공공복지에 사용하는 지식의 공공성을 강조한다. 국제화 전략으로 대학의 G8에 해당하는 국제연구형대학연합(IARU) 활동도 자랑한다. 2006년 1월 시작한 IARU는 세계적 지도자 양성을 위한 세계 톱클래스의 10개 대학이 중심이다. 아시아에서는 중국 베이징대, 싱가포르국립대와 도쿄대가 참여한다.
아시아 최고 대학인 도쿄대도 법인화 이후 난제를 안고 있다. 대학의 자율권 회복과 연구, 교육의 경쟁력 강화를 가속화하는 반면 국제 경쟁력 강화와 연구기반 조성을 위한 연구기금 확보 및 대학의 구조조정 등 대변혁을 요구받는다. 교원의 정년 연장과 정원 감축으로 고령 교수는 증가하고 젊은 신진 연구자는 줄어드는 점도 문제라고 했다. 도쿄대의 명암이 그와 비슷한 길을 가려는 국내 국립대에 반면교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