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 ‘화폐개혁’해도 계획경제는 실패한다

  • 동아일보

북한이 구 화폐를 신 화폐와 100 대 1의 비율로 바꾸는 화폐개혁을 전격 단행했다. 화폐 이름 ‘원’은 그대로 두고 액면만 100분의 1로 절하한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화폐액면절하)이다. 북한 당국은 당초 구 화폐를 가구당 10만 원까지만 교환해주려다 주민 반발이 거세지자 교환 한도를 15만 원으로 늘렸다고 한다. 신권과 바꾸지 못한 구권은 그대로 휴지가 되는 것이니 주민의 동요가 클 것이다. 북한 전문 인터넷 신문인 데일리NK는 북한 내 소식통을 인용해 어제 화폐교환이 시작되자 졸지에 재산을 잃게 된 주민의 불만이 높아 후유증이 심각하다고 전했다.

북한은 화폐개혁 사실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아 의도와 배경을 파악하기 어렵다. 북한 전문가들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목적이 핵심이라고 분석한다. 북한에서는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장마당(시장)이 활성화하면서 물가가 크게 올랐다. 예를 들면 쌀 100원어치를 사다가 뻥튀기를 만들어 150원에 파는 사람이 생겨 결과적으로 시장에 유통되는 돈이 늘어나 물가가 가파르게 오른 것이다. 현재 북한 노동자의 평균 월급은 3000원 수준인데 쌀은 1kg에 2000원이 넘는다. 북한은 금리정책을 통해 유동성 과잉을 해소할 수 없기 때문에 시장에 풀린 돈을 줄이기 위해 일정액 이상의 재산을 강제로 환수하는 극약처방을 내린 것이다.

암거래 시장에서 유통되는 지하자금을 끌어내고, 외화벌이를 위해 해외에서 일하는 무역 일꾼과 주재원들이 정해진 ‘충성자금’만 바친 뒤 개인적으로 챙긴 돈을 토해내게 하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외화벌이 일꾼의 자금이 부동산 시장에 몰려 평양의 최고급 아파트 가격은 1, 2년 사이 배 이상 폭등했다.

북한이 계획경제를 강화하려고 시장 억제에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북한이 150일, 100일 전투를 통해 실물부문 재건을 시작한 데 이어 계획경제의 허점을 부각하는 시장기능을 억제하기 위해 화폐개혁을 단행했다는 설명이다.

의도가 무엇이든 주민을 진정시키지 못하면 이번 화폐개혁은 북한 당국을 곤경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북한 주민이 사유재산을 늘려 잘 먹고 잘살아보려는 인간 본성에 눈뜨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소련과 동유럽의 계획경제도 실패했고 중국도 시장경제로 돌아섰다. 북한의 계획경제는 어떤 변화를 시도하든지 근본이 바뀌지 않는 한 실패가 예고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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