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테이션/동아논평]이재오 권익위원장의 ‘완장’

  • 입력 2009년 10월 15일 17시 24분


엊그제(13일) 현대 계동 사옥에 전국 공공기관의 감사 500여명이 모였습니다.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이 '청렴도 향상을 위한 감사회의'를 열었기 때문입니다. 이 위원장은 "권익위원회 직원들에게 점심은 5000원짜리를 먹으라고 했다"면서 그게 중도실용이고, 친서민 정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같은 날 이 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내년부터 정부 및 공공기관, 고위공직자 그리고 공공기관 임원들의 청렴도를 평가해서 공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는 권익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권익위와 감사원, 검찰, 경찰, 국세청 등 5개 기관이 참여하는 '반(反)부패기관 연석회의' 정례화도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공직자들의 청렴도가 높아져야 국가 경쟁력이 높아지고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지당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위원장의 행보를 보는 눈이 곱지만은 않습니다.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당장 "칼국수도 6000원인데 요즘 5000원짜리 밥 먹을 곳이 어디 있느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고위 공직자 2000명의 청렴도를 어떻게 수치화할 것인지, 의구심도 적지 않습니다. 뇌물비리 사건에 관련되거나 잦은 민원의 대상이 될 경우엔 당연히 청렴수치가 떨어지겠지요. 내부자 고발도 당연히 있어야 하지만 자칫하면 근거 없는 무고나 투서가 성행할 수도 있습니다.

더 큰 문제점은 '청렴도 줄 세우기'가 공정하지 않을 경우, 정권의 '미운 털' 골라내기로 악용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위원장이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왕(王)사정'을 자임함으로써 내밀한 모든 정보를 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이를 바탕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즉 이 위원장의 당초 포부와는 다른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기지요.

항간에서 이런 우려가 나오는 이유는 바로 이 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너무나 가까운 '실세'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대통령 측근들의 '월권'을 감시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동아논평이었습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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