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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10월 12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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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8시, 스웨덴 한림원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하자마자 편집국 문화부에는 비상이 걸렸다. 지방판 마감이 80여 분 남았는데 작가의 작품세계와 생애를 정리하는 시간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매년 겪지만 올해도 예상이 빗나갔다. 더구나 뮐러는 국내 번역작이 없고 외신도 더뎌 담당 기자의 속을 태웠다. 이럴 때는 ‘남의 잔치에 웬 소동’이라는 비애마저 든다.
긴장하는 일이 또 있다. 2002년부터 후보로 거론돼 온 고은 시인의 수상 여부다. 당일에는 가능성이 높든 낮든 고 시인의 안성 자택 인근에서 기자가 기다린다. 올해도 20여 명이 대기하다가 발표 직후 떠났다. 2005년에 비해 올해는 가능성이 낮다고 했지만 1%도 무시할 순 없다. 관련 기사들도 여러 개 준비해둔 지 오래다. 올해도 낭보를 듣지 못한 그는 10일 필자와의 통화에서 “노벨상이라면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짧은 통화였지만 매년 되풀이되는 시인의 부담을 느낄 수 있었다.
국내 문단에서도 안타까움이 이어진다. 하지만 노벨문학상이 1901년 처음 시행된 이래 아시아 수상국은 인도(타고르) 일본(가와바타 야스나리, 오에 겐자부로) 중국(가오싱젠)뿐이다. 가오싱젠은 중국에서 망명한 프랑스 국적 작가다. 노벨문학상은 1960년대 말 이후 세계로 눈을 돌렸으나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권에 치우쳐 있고 아시아 아프리카 홀대도 두드러진다. 레프 톨스토이, 마르셀 프루스트 등을 제외해 오명을 남겼고 스웨덴 작가가 6회(공동 1회) 받은 건 주최 측 프리미엄 덕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스웨덴 한림원은 수상자 발표 때 선정 이유를 인류의 보편성을 지역 민족의 특수성을 통해 들여다봤다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일본 그림을 연상시킨다. 그림 속의 아름답고 열렬한 사랑과 표정의 상징들은 인류의 생명이 결합되는 것을 나타낸다.”(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 “보편적 타당성과 언어적 독창성으로 중국 소설과 드라마의 새 길을 열었다”(가오싱젠·2000년) “고향 이스탄불의 우울한 영혼을 추적하면서 문화의 충돌과 교차에 대한 새 상징을 발견해냈다.”(오르한 파무크·2006년)
이를 보면 한국 문학이 노벨문학상과 거리가 멀 이유가 없을 듯하다. 한국 작가들은 지난 세기 식민지, 6·25전쟁과 남북 분단, 산업화와 민주화 등 세계 인류가 겪었을 보편적 고뇌와 갈등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했고 이를 형상화한 작품도 없을 리 없다. 폴란드 작가들이 네 차례 받은 이유도 강대국 지배, 세계대전과 유대인 문제, 사회주의 등을 다양하게 경험한 덕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노벨문학상을 타려면 해외에서 한국 문학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도록 ‘고급 번역’이 시급하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것이 아니다. 이문열 황석영 씨 등 여러 작품이 해외에서 나왔지만 스웨덴 한림원의 눈길을 끌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문학의 가치를 우리 스스로 얼마나 알고 즐기고 있냐는 점도 뒤돌아봐야 한다. 한국 영화의 잇따른 해외 수상은 국내 영화 팬과 시장이 뒷받침한 덕분이다. 소설가 김형수 씨는 “고 시인을 (문학 외적으로) 잘 아는데 정작 그의 문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이문열 황석영 씨는 물론이고 한때 후보였던 김동리 서정주 작가에 대해서도 같은 말이 나올 수 있다. 그러기에 노벨문학상을 연례행사로 볼 게 아니라 우리 문학의 가치를 폭넓게 인식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리 스스로 문학을 즐기는데 노벨문학상이 오지 않을 리 없다.
허엽 문화부장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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