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유치원 의무교육, 한다면 부실 공교육 안돼야

  • 입력 2009년 8월 11일 03시 03분


정부가 만 5세 아동의 유치원 교육을 무상 의무교육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마련한 ‘소비 진작을 통한 경기 활성화 추진 방안’으로 젊은 부부의 보육비와 사교육비 부담을 덜어줘 민간의 소비 여력을 키우려는 취지에서 나왔다. 저소득층과 맞벌이 부부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함으로써 심각한 저(低)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07년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정책 중 하나가 질 좋은 조기교육’이라고 강조했다. 저소득층 학생들이 중고교 교육에서 뒤처지는 것을 막으려면 어렸을 때 중산층 어린이들만큼 좋은 교육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논리적 사고와 사회 정서적 능력도 유아기에 상당 부분 발달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헤크먼은 ‘유치원 때의 1달러 투자가 나중에 8달러의 소득으로 되돌아온다’는 이론으로 유명하다. 질 좋은 조기교육은 성인이 된 후 괜찮은 일자리로 이어지고, 범죄율과 실업률을 줄여 개인과 사회에 모두 이익이 된다.

영국 스웨덴 등 선진국들은 유치원 의무교육을 중요한 인적 투자로 여긴다. 정부가 ‘경기 활성화 방안’의 차원에서 가볍게 시작한다면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꼴이다. 웬만한 도시지역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이들은 유치원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학교 교사와 시설, 교재에 실망한다. 교육 수요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유치원은 원장과 교사들의 자세부터 다르다.

학부모들의 신뢰를 받지 못한 공교육 체제를 그대로 둔 채 유치원까지 의무교육을 확대한다면 부실한 공교육을 조기화(早期化)할 우려가 크다. 자칫 유아교육까지 ‘공교육 유치원’을 다녀와서 ‘사교육 유치원’에 또 가야 하는 이중 부담이 생기지 말란 법이 없다.

정부는 유치원 교육이야말로 국가경쟁력의 핵심인 인적자원 개발의 출발점이라는 인식으로 정교한 교육 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연간 2조 원에 이르는 예산 마련도 차질이 없어야 할 것이다. 경쟁력 있는 유치원 교사들을 ‘철밥통’으로 만들어 질을 떨어뜨리는 의무교육이라면 안 하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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