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홍수영]스스로 ‘소신파’라는 議員들,국민들 눈엔…

  • 입력 2009년 5월 16일 02시 54분


‘가치 있는 일이라면 분명한 입장을 밝힌다.’

18대 국회에서 주요 직책을 맡고 있는 의원들이 공통적으로 믿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다. 동아일보가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팀과 공동 조사한 정치 리더십 스타일에 따르면 조사 대상 국회의원 64명 가운데 58명이 이 문항을 평소 자신의 리더십 행동과 비슷한 것으로 꼽았다. 또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서 소신과 고집이 있다’는 문항을 53명이 선택했고, ‘추진력이 있다’는 문항에도 48명이 동그라미를 쳤다. ▶본보 15일자 A1·4·5면 참조

소신과 고집, 추진력은 바람직한 정치인을 연상할 때 많이 떠올리는 이미지다. 정치인이라면 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는 싸움질하는 의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너무 과격하게 싸워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도 가끔 있다. 국회의원들의 이런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소신이나 고집, 추진력 대신 독선, 몽니, 밀어붙이기 같은 단어들이 18대 국회의원에게 어울린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국회의원이 생각하는 ‘가치 있는 일’은 국민의 생각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국회를 주식회사로 간주한다면 국회의원은 ‘4년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임원’에 해당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이 추구하는 목표는 주주 이익의 극대화이다. 그러나 정작 회사들은 고객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강조한다. 민간 기업이야 이익을 내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겠지만 국민을 대신해야 하는 국회가 국민의 이익은 뒷전인 채 계파의 이해관계에만 몰두하는 것은 실망스럽다. 정치권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계파의 이해에 충실한 의원들이 싸움의 명분으로 “국민을 위해서…”라고 얘기하는 것을 적지 않게 들었다. 이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이 보여주는 고집과 추진력에 놀랄 때가 많지만 그들은 실제로는 국민이 아니라 정작 계파의 수장에게 충성했던 것 같다.

의원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그렇게 싸우는 걸까. ‘노는 국회’라는 비판에 대해 의원들은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데…”라고 항변한다. 여야가 극한대립을 보이고 당내에서도 계파가 갈려 서로 다투느라 소모전을 펴는 18대 국회를 기자는 곁에서 지켜봤다. 개원 2년차를 맞는 의원들은 스스로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겸손히 되돌아봐야 할 때이다. 내가 진정 ‘가치 있는 일’이라면서 몰두하는 모습이 국민들에게는 어떻게 비칠 것인지를.

홍수영 정치부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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